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김윤덕류 가야금산조와 병창의 보유자
대한민국 국악제전에서 우연히 만난 이영희 선생님이 군산여고 동문이었다.
깜짝 반가워하며 알게 된 여고 후배의 소개로 대선배인 이영희 선생님을 찾아간 곳은 경기도의 한적한 동네였다.
오래전 기억을 꺼내는 순간마다 소녀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은 영락 여고 시절 소녀 같았다.
처음 만난 여고 후배와 함께 고향 군산과 모교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고 시절의 기억부터 가족 이야기, 평생 국악의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까지 선생님의 기억 속 시간이 하나둘 펼쳐졌다.
1930년대 군산에서 경성고무를 운영했던 이만수 사장이 부친의 사촌이었다는 이야기, 그 인연으로 어머니가 만월표 고무신 가게를 운영했던 이야기.
선생님의 기억 속 군산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사람과 집과 가게, 그리고 어린 시절의 꿈이 켜켜이 쌓여 있는 삶의 모습이었다.
대학 4학년 때 중앙방송국, 지금의 KBS가 주최한 국악 콩쿠르에서 수상한 선생님은 심사위원의 추천으로 국악예술학교 교사가 되었다.
박녹주, 박초월, 김소희 같은 명창들과 거문고의 김영재 명인. 당대 최고의 예인들과 한 시대를 함께 살아온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크게 내세우지 않았다.
“내가 여기까지 온 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좋은 선배들과 함께했기 때문이야.”
지금도 일요일마다 후배들을 가르치신다는 가야금 명인의 열정이 널찍한 거실 한편에 세워놓은 수십 개의 가야금들에서 진하게 느껴졌다.
2022년에는 무형문화재 전승교육관 건립을 위해 50억 원 상당의 개인 토지 1,700평을 문화재청에 기부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오며 모은 재산을 자신을 위해 남겨두기보다, 재능 있는 후배 예인들을 위해 쓰겠다는 88살 예인의 삶은 그래서 태산처럼 크게 다가왔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 필자와 함께 유귀옥 군산여고 증경회장, 최경희 동문, 그리고 선생님의 문하생들이 군산의 골목골목을 돌았다.
진작 오지 못한 지난 시절이 아쉽다고 여러 번 말씀하는 모습에서 소녀와 백발의 선생님 모습이 교차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영동을 돌아보며 회한에 젖었고 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어릴적 인력거를 탔던 경험이 엊그제 같다며 활짝 웃으셨다.
생전에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박물관의 '만월표 신발가게'를 발견하자 깜짝 반가워하시며 진열된 고무신을 어루만지며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지셨다.
이영희 선생님은 평생 예술을 위해 살았다. 그리고 이제 그 삶의 결실을 또 다른 예인들을 위해 쾌척하셨다.
자신이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돌려주는 마음.
어쩌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전승은 가야금의 선율만을 이어가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 지켜온 예술에 대한 마음과 후배를 향한 책임까지 건네려는 깊은 뜻도 함께라고 생각되었다.
글/정미란(매거진군산 편집위원) / 2026.09.15 18:36: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