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화단을 떠났던 화가 채수억, 그가 다시 캔버스의 세계로 돌아온 지 10년이 지났다. 군산 예술계의 뿌리인 대한민국 2호 사진작가 채원석 선생을 아버지로 두어서일까, 그의 작품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자 막중했던 책임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정직하고 성실한 건 당연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이 틀을 벗어나 끼와 열정으로 일탈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처럼 그는 늘 단정했다.
그의 아버지 고 채원석 선생은 대한민국 사진예술 1세대이다. 일제 강점기 군산을 본거지로 한국 사진계를 열어갔다. 그 분은 철저하게 사진 예술에만 매달렸다. 채수억이 화가가 된 까닭은 아버지를 보면서 예술의 기초를 익혔기 때문 아니었을까.
늦게 전주대학교 미대에 들어갔고, 대학에서 동양화와 서양화, 조소 등을 두루 경함한 그는 서양화에 정착했다. 지금까지 유화를 한지 40여년이다.
“그림을 시작할 때는 주로 수채화를 그렸는데, 표현의 영역이나 작품의 보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점점 유화의 매력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생활고 때문에 6년을 외도하고 돌아와서 작품이 안되었던 그는 정말 우연처럼 자화상이 그려졌다. 그는 용기를 내서 ‘도심 속의 자화상’30여점을 그렸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밥’과 ‘굴비’ 등 음식 연작에서부터 악보와 꽃으로 상징되는 빛의 환희를 그렸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화실을 내달리는 꿈을 꾸기도 했고, 강변에서 남몰래 사나이 눈물도 흘렸습니다. 후회스런 날들이 지났는데, 어느 날 플라타너스에서 새순이 돋는 모습이 제 자신처럼 보이는 거예요.”
2015년 즈음부터 보석에 빛이 반응하여 변화하는 과정을 주목했다. 빛과 스펙트럼을 통해 꿈의 세계에 다다르는 영역을 비구상과 반구상의 형태로 내놓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단순화의 과정을 거쳐 어느 한 부분이 클로즈업 되는 상상의 세계를 찾아 나섰다. 그는 오늘도 변화하는 빛을 좇아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다.
<채수억 약력>
개인전 8회(군산.안산.서울.전주), 단체전 총 295 회
한국미술협회 서양화분과이사. KAMA현대미술가협회. 광주신형회
대한민국회화제 회원. 군산구상작가회.군산환경미술협회.
2007년 미술과비평 선정 작가전, 최우수작가상 수상
주소:전북 군산시 대학로 145 (4F) 화실
채명룡 / 2018.07.30 18: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