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거나 이파리의 색을 바꾸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대표적인 게 바로 4월 벚꽃과 10월 단풍이다.
군산은 ‘근대역사유적’에 못지 않은 벚나무 군락이 유명하다. 1908년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려고 일제가 만든 전주와 군산을 잇는 도로(국도 26호선)가 1975년 확포장되어 번영로가 되었다. 이 때 왕벚나무가 심어졌다.
갈 곳이 많지 않았던 1980년대, ‘꽃놀이’ 하면 전군도로 100리 벚꽃길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했다. 요즘엔 경치 좋은 도로마다 벚나무들이 심어졌으며 번영로 꽃구경은 옛말이 되었다.
왕벚나무에 대해 한라산 등에서 자라나는 자생종으로 분류(두산백과)하고 있으나 일본의 국화로 인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36년의 식민 시대를 겪게 만든 일본의 국화 ‘벚꽃(사쿠라)’에 대한 반감은 당연하다.
근대역사경관지구라는 독특한 관광자원을 만들어가고 있는 군산에서 월명동과 월명산은 그 핵심이다. 일본풍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건물이 많다. 강점기에 심어졌던 벚나무는 견뎌온 세월만큼 고목이 되었다. 그런데도 때가되면 화사한 꽃을 피운다.
월명산 벚꽃터널을 가면 T.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 ‘4월은 잔인한 달’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뭔지 모를 갈증에 가슴이 뛰기도 했다.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서 일본 국화라는 의미와 동네 수호신같은 이미지가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요 「걱정말아요 그대」의 ‘지난 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가사처럼 같이 가야 한다.
월명산의 꽃피는 봄은 잠깐이고 여름과 가을엔 해풍에 시달리다 낙엽이 지곤한다. 그래서 사계절은 아니더라도 봄과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숲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 하게 되었다.
산과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은 보는 이들을 흥분시킨다.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처럼 자태고운 나무들이 가을 볕을 태운다. 붉은 물이 드는 시기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0월 하순에서 11월 중순이 단풍의 계절이다.
정읍 내장산, 무주 적상산, 순창 강천산 등이 유명하지만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단풍나무숲은 지난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명성을 쌓고 있다.
‘늦지 않았다. 지금 시작하라’ 라는 조셉 존슨(김수빈 옮김/하늘아래)의 책 제목처럼 모든 일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시작하면 늦지 않으나 시작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 이미 늦은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지금부터라도 월명산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고창의 작은 마을에도 전국 유일의 단풍나무 천연기념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도심 속의 아름다운 숲 ‘월명산’을 가진 군산에서 이런 정도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단풍은 잘 자랄뿐더러 다른 나무 아래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질긴 생명력이 있다. 수종으로서는 단풍나무·당단풍나무·신나무·복자기나무 등이다. 나무마다 다르겠지만 묘목 또한 1만원 내외이다.
근대역사 관광객들에게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월명산의 화사한 4월 벚꽃을 보여주고, 10월에는 성숙한 여인네의 붉은 열정같은 ‘군산의 단풍숲’을 보여주자.
‘군산시민 단풍나무 한 그루 갖기 운동’을 제안한다. 생각하면 늦기 십상이니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자’. 그리하여 10년 후엔 월명산 단풍숲이 수원지 물빛에 비춰지도록 하자. 근대역사경관지구에 새로운 동력이 되도록.
김민재(본지 운영위원장) / 2021.07.07 16:2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