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의 사무실에는 최근 며칠 간 험악한 분위기가 흘렀다. 점심 쯤 사무실에 나온 그는 말없이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조용히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럴 때가 가장 무서웠다. 그는 오늘도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거나, 다리를 테이블에 걸친 채 생각에 잠기거나, 소파에 몸을 묻고 파리를 고무줄로 쏘아 죽이며 시간을 보냈다.
사무실의 그 누구도 유준에게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불똥이 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충성스럽지만 머리가 모자란 거루가 나섰다. 거루는 마계에서 태어나 수백 년을 살아온 악마였지만, 평범한 인간들보다 한참 지능이 떨어졌다. 마계에서 유준을 만나게 된 뒤, 그를 따라 인간계까지 쫓아와 노예처럼 살았다. 그러나 그는 마냥 행복했다.
“형님, 고민 있으십니까?”
거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준은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파리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왜?”
유준이 멍한 표정 그대로 물었다.
“…고민이 있어 보이셔서요.”
“있어.”
유준이 거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뭐?” 라는 눈빛이었다.
당황한 거루는 뒤의 직원들을 힐끔거렸다. 고민이 있는 것을 물어보는 데 까지만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질문으로 이어가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그의 능력 밖이었다. 그러나 이미 다른 녀석들은 유준을 피해 사무실을 빠져나간 뒤였다. 당황한 거루의 이마에 근심이 가득 맺혔다.
“제가 할 일이 있을까요?”
“없어.”
“아, ……네.”
거루는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때, 사무실 문을 열고 세화가 들어왔다. 깊이 눌러 쓴 모자와 커다란 선글라스로 단단히 변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모자를 벗어던지며 묶었던 머리를 풀어 헤쳤다.
“어휴, 무슨 냄새가 이렇게 나. 여기서 사람이라도 잡았어? 야, 하보! 거기 창문 좀 열어. 오빠, 오랜만이지~. 나 왔어.”
세화는 거루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유준에게 가 안겼다. 그러나 유준은 그다지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다.
“왜 애를 옛날 이름으로 부르고 난리야. 좀 고치라니까, 하보가 아니고 거루. 한 번을 못 알아먹네.”
유준은 귀찮은 듯 세화를 밀어냈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준의 셔츠 사이로 손을 넣으며 더 파고들었다. 그리곤 불꽃이 그려진 손톱으로 간질이며 교태를 부렸다.
“익숙하니까 그렇지. 왠지 오늘따라 더 몸이 뜨겁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일이 생각대로 안 돼. 좋은 미끼를 물었다 싶었는데, 영 불안하기 짝이 없어. 아무래도 병든 닭을 집은 것 같아.”
세화는 선글라스를 벗어 빛나는 외모를 드러냈다. 초특급 인기 여배우로 활동하는 세화의 하얗고 청순한 얼굴에는 짜증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검고 깊은 눈동자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났다.
임규현 / 2019.06.25 11:3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