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보선창을 지나 화려했던 추억의 골목, 개복동에 들어섰다. 여기가 1990년대까지 군산의 중심이었으며 2천년대 후반 전북도에서 예술인의 거리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첫 번째 사업 대상지가 여기였다. 그만큼 여러 근대유산 혹은 복원할만한 가치 있는 생활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요즘은 인기가 시들한 고은 시인이 청년기에 문학의 열정을 불태웠던 비둘기 다방 자리도 건재하다. 국도극장, 군산극장으로 기억되는 극장 골목은 그 시절을 추억하듯 옛 영화만 간직한 채 서 있다.
개복동이 그렇듯, 지역 문화와 지역 예술은 나름의 특색이 있다. 사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행위자나 대상 또한 지역적이어야 하며, 부족한 부분이 생길 때 이 부분만 다른 곳에서 채워나가면 된다고 본다.
그런데 일부 출향 인사나 진보적인 성향의 문화 예술인들 중에서 개인의 능력차나 예술적 성취도 등에서 우월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오면 뭔가 획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지역과 동화되려면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의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태생적으로 배타적인 소도시에서 지역인들과의 유대, 정서적 공감대 형성은 매우 중요하다. 개복동의 미로처럼 혼자 잘났다간 자칫 ‘모난 돌 정 맞는다’ 는 말처럼 되기 십상이다.
전북권 문화예술의 중심 도시엣소 역할을 한다고 해서 다른 지역을 하수보듯 한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문화와 예술이 계급은 아닌데 일부는 이런 고정관념에 꽉 짜여 있는 듯하다.
군산의 한 문화단체의 모임에서 “전주 등 외지의 능력 있는 문화예술가. 혹은 기획자들을 초빙해서 군산의 문화 예술계를 이끌어줘야 한다.”는 예기가 오갔다. 필요한 말이고, 할 만하니 했겠지만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산사람의 입맛은 쓰다. 그렇잖아도 애달픈 군산의 현실과 뒤처진 문화예술의 저변 때문에 가슴 한번 펴지 못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산은 개복동 골목처럼 작다. 사람들의 행위도 쉽게 눈에 잡힌다. 어젯밤 누구네 집 부엌에서 누가 뭘 했는지 다음 날이면 안다. 하물며 힘없는 문화 예술인들의 자존심을 꺽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 상처는 오래갈 거라고 본다.
일제 강점기, 등짐을 져서 먹고 살려고 했던 전국 팔도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튼튼한 울타리가 존재하는 게 여기이다. 배타적이지만 같은 아픔을 가진 ‘동류의식’이 지역의 정서이다. 오늘의 역사도 그렇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도시, 군산의 아픔을 역사관광이라는 이름을 붙여 팔려는 군산사람들의 안쓰러움이 전해지지 않는가.
군산의 근대문화자산에 대해 개혁과 진보를 주장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진지한 성찰이 있었으면 좋겠다. 낫지 않은 상처는 애정과 관심과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아픈 군산을 향해 어느 누가 관심을 가졌고, 어느 누가 손을 내밀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군산사람들에게 한 발 한 발 진정으로 다가갈 때 군산이 열리고 사람들의 가슴이 열릴 것이다.<끝>
채명룡 / 2018.09.10 20:5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