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호 대표>
서해안 선망업 가공사업 개척자
어렵고 힘든 어민들 도우며 살아갈 터
코로나19로 세상이 어지럽지만 그의 사업장은 눈코 뜰 새가 없다. 지난 2009년 비응도 어항에 냉동 90톤(하루 처리능력 4,500박스)과 냉장 3천톤 규모로 세운 (주)서진수산, (주)비응냉동냉장, (주)서진정수가 바로 그 곳이다.
군산중과 군산고, 그리고 군산수산전문대학을 졸업한 노평호 대표. 그는 바다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먼저 바다를 한 번 본다는 수더분하게 생긴 그의 입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 나오다니 뜻밖이었다.
30년 넘게 수산업 외길을 걸어 온 그의 태어난 고향이 경남 삼천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산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부도로 6남매 가운데 막내였던 그는 부모님과 함께 군산의 신풍동 말랭이 판잣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 이전에 친척이 운영하였던 신성디젤이라는 철공소를 큰 형님이 맡았던 게 군산 정착의 인연이었죠.”
그는 서해안에 생성된 고등어와 오징어 어장의 가능성을 보고 오늘의 자신을 성장하게 이끌어 준 ‘자란 고향’ 군산에 올인 하기로 마음먹었다.
국내 생산량 50~60%의 고등어, 30~40% 정도의 오징어가 서해안 어장에서 나오는데 비응도에서 선망업 수산물 가공과 냉동 냉장업, 어선 등에 물을 공급해주는 사업체를 만들었으니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서해안 고등어를 비응항으로 들여와 소득을 올리는 서진수산>
젊었을 때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돌며 수산물 사업에만 매달렸던 그가 길러준 고향에 돌아온 건 우연이 아니다.
‘어촌에서 태어났으니 어촌에서 살리라’는 좌우명의 실천이기도 했다. 그러나 냉동냉장 공장을 지으면서 자금난에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시련을 견뎌야만 했다.
지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뤄진 한·중 해운협정으로 130여척이나 되었던 군산의 안강망이 감척되었다. 그 이후 군산경제의 한축이었던 수산업이 붕괴되었는데 노 대표는 이 걸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꿈을 꾼다.
“수산업 쪽에는 제가 가진 ‘인적 인프라’가 꽤 되거든요. 전국을 돌며 도움을 주고받던 사람들과 오랜 기간 쌓여진 인연이지요. 군산에 수산관련 인프라를 만들려면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지요.”
노 대표가 놀고 자랐던 고향을 떠나 객지로 돌다 군산에 온지 11년이 지났다. 그는 사는 날까지 군산과 함께하려고 마음먹었다.
수산물 가공은 물론 고등어와 오징어로 특화된 가공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일당’으로 고용하고 있다. 잔돈벌이라고 우습게 볼 수도 있지만 수산업계에서는 그런 일을 해서 먹고사는 분들이 너무 많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군산의 수산업 한 켠에서 뿌리를 내렸으니 나를 길러준 군산에 대해 어느 정도 신세는 갚은 셈이지 않을까요?”
처음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기가 어렵겠지만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려고 한다는 그의 얼굴에서 군산 수산업의 부흥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서진수산·㈜비응냉동냉장·㈜서진정수
대표이사 노평호
군산시 비응6길 23
(063)468-4460
채명룡 / 2020.04.08 16: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