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이 어디 편하랴만 군산의 골목길은 유난히 좁고 울퉁불퉁 거린다. 억센 해망동 바람을 견뎌낸 해망굴을 지나 도심지로 접어들면서 왼쪽으로 꺾어졌다. 1970년대~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영화동이다. 시장통이나 그 주변 술집들이나 고즈넉한 표정으로 녹슬어가고 있다.
‘양키문화’의 잔재가 보도블럭 틈새에 남아 있는 이 골목에는 언뜻언뜻 ‘콩글리시’가 눈에 띈다. 근세사의 굴곡진 삶을 간직한 곳이라서 그럴까. 일본풍(?)의 건물들과 미군 문화와 섞인 국적 불명의 묘한 분위기가 옛 도심지에 남아 있다.
영화시장은 지금도 70년대 풍이다. 젊은 창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선전 문구가 빈 가게창가에 나붙어 있다. 움직이려는 건 좋지만 이 시대에 맞게 그리고 긴 기간 존속 가능한 범위에서의 계획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젤라 분식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서가 아니라 골목의 맛 집이 가야할 답안을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음식이 아니라 특색을 가진 맛과 조리법, 그리고 전통을 간직하는 영업 방침 등으로 나름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영화시장을 지탱하는 힘은 서민적인 모습이다. 그 이미지를 시민들과 근대역사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동과 근대역사 경관지구는 보여주려는 쪽에서만 요란하다.
이걸 자랑스런 근대문화로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극복해야할 문화유산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걷다보면 때론 혼란스럽다.
찾는 이 없던 군산의 옛 도심지 골목길, 그 길 위에 나는 서 있다. 번창했던 기억만 남은 건물주변이 근대의 이름으로 다시 복원되고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골목마다 애환이 서린 군산 구도심. 일제 강점기엔 부두 노동자와 가족들의 눈물과 한숨이 여기 허름한 골목 모퉁이마다 배어 있었다. 그 중심이 근대역사지구이다. 근대라는 이름으로 뭇사람들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들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으려고 할까.
어께를 같이하고 있는 영화동 일대는 해방 이후 암울한 시기 미군들에게 우리 여인네들이 웃음을 팔았던 곳이다. 이글스클럽 스톡클럽 등등 화려했던 지난밤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것같은 영화동 거리.
이 골목엔 큰 덩치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양공주, 혹은 양색씨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던 우리네 누이들이 있었다. 누가 댄서의 순정이라 했는가. 영화동 거리는 절박했던 삶의 현장이었을 뿐이다.
지금도 그 흔적을 갈매기 깃털만큼 남겨놓고 있는 영화동이다. 네온싸인 화려했던 거리, 얼기설기 얽힌 전깃줄이 혼돈의 세월을 말해준다.
빙빙 돌아 신창동, 월명동 근대의 거리에 섰다. 불금이 되면 여기를 찾는 이들로 소란스럽다. 그 거리로 바깥사람들을 더 불러들이려고 요즘 한창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근대소설마을도 그렇고 근대역사지구 사업도 그렇다. 오늘 돌아보는 이 길은 근대라는 이름으로 포장은 했지만 일제강점 기간의 눈물 나는 삶의 현장이었으며, 그 한숨과 눈물이 오늘까지 남아 있다.
일제의 유산들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역사가 주는 교훈은 엄연하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계속>
채명룡 / 2018.07.30 18:5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