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락도 화백)
군산 도심 속의 변방, 나운 주공 4단지 한쪽 귀퉁이에서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추상화가 아닌 반추상이 주류였으며, 주로 6호 정도의 크기였다. 집착과 반항에서 조금 비껴 선 듯 한 모습이다.
지금부터 10년 전, 일흔살에 들어선 최락도는 그 때까지 보지 못했던 밝은 청색톤의 색감으로 화폭을 채웠다. 좋은 작품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빠져나와 인생을 지긋이 바라보는 관조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대하는 모습. 비로소 ‘가을이 가는 소리’ 가 제대로 소리를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를 만나보니 또 다른 세계를 향하여 이미 한발 움직이고 있었다. 추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 기억의 행로, 세상을 담기 위한 몸부림
그가 내놓은 한 점의 작품과 마주했다. 회청색의 바탕에 흰색(혹은 회색이 덧칠해져 있었을 것이다) 톤으로 사람의 형체가 무수히 새겨져 있고, 그 둘레는 커다란 원으로 덮인 그림이었다.
나는 그림 속의 수 많은 사람군상을 봤다. 그런데 락도 선생은 “사람으로 보든 안보든 그건 오로지 관람자의 몫”이라고만 했다. 그림을 보면서, 점 하나를 찍은 것 같은데 모두 다른 형태의 사람으로 완성시킨 그의 능력에 대해 속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그림의 의미를 찾느라 부단히 애를 썼다.
기억에 남아 있기로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남겨진 점들을 보면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생각하기도 했으며, 천차만별의 인생 행로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짙은 청색과 회색톤의 바탕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탄생을 위한 고통의 시절을 이렇게 표현했으리라 짐작했다.
압권은 그 모두를 감싸 안은 타원형의 세계였다. 세상을 모두 덮을 것 같은 그 이미지 앞에 나는 숙연했으며, 뜻 모를 엄숙함에 사로잡혔었다. 그렇게 그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되어 흘러갔다.
오늘의 그는 회현 작업실에서 보여주었던 점의 세계마저도 벗어나려고 한다. 단순화 시키는 이미지의 해체, 혹은 이미지의 통일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무지한 나의 생각일 뿐, 그는 한 번도 그렇다고 말한 바 없다. 그의 필생의 작업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정말 궁금하다.
◆ 최락도의 우주류, ‘가을이 가는 소리’를 기다리며
(최락도의 작품 '가을 편지')
‘밀레’ 의 길을 가고자 했을 때부터 최락도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색이 바로 밝은 청색과 회색이다. 그는 “청색을 쓰는 이유는 세상과의 동행, 혹은 삶의 조류에 따르는 일이기 때문” 이라고 했다.
활화산같이 나오던 현실 고발과 역설을 통한 반항을 서슴지 않았던 화가 최락도. 그도 외면과의 타협을 원했던 것일까. 세상과의 단절의 시기를 이겨낸 그였지만 굳어진 몸 한쪽은 그를 자유로부터 가두어 놓았다.
마음은 열어놓을 준비가 되었지만 그의 어두움은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우주류’ 는 자유를 향한 열망을 담고 있다. 그 스스로 “단순화의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완성시켜가는 경지를 추구하는 일” 이라고 말하듯이 그의 작품세계는 이 시기를 지나면서 명료해지고 시공(時空)을 초월한 관조자의 경지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우주는 아침 해가 뜨고 서산에 지듯 일정하지만 우주에서 보는 지구,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의미로든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생각에 빠져들면 그의 작품 세계가 어렴풋이 다가선다.
그 단순화의 결실이 지금 그가 몰두하고 있는 ‘가을이 가는 소리’ 이다. 지난 2011년 전람회 때는 반원의 형태였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길을 담아내려 했다면, 내년 그의 필생의 혼이 담긴 우주류는 어떤 모습이며 무엇을 담고 있을까.
◆ 스스로 낮춰 얻은 자아 성찰, 그리고 깨달음
(최락도의 작품 '어머니')
그는 또 여든의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지난 2011년 전람회 때 할미꽃을 형상화 한 어머니 연작을 다시 시도하려는 생각이다.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이후,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작품은 그의 화두였다.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의 얼굴은 떠나지 않아. 그림 한다고 했을 때 다른 식구들은 모두 안된다고 했지만 어머니만이 나를 믿어주셨거든.” 그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철이 든 듯했다.
없는 시골 살림을 꾸려가느라 머리에 일찍 서리가 내렸던 어머니. 화가를 한다는 아들의 말을 끝까지 믿어주었던 어머니가 없었다면 오늘의 그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10년전 그의 할미꽃 작품에는 허리 펼 틈조차 없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그만 둬라’ 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잔잔히 베어들어 있었다.
그 스스로가 “할미꽃은 내 그림의 원초적 고향과 같은 것이며, 어머니의 강직함을 표현한 작품” 이라했던 ‘할미꽃 연작’ 은 암울했던 시절을 견디어 낸 고통과 좌절의 상징색인 어두운 청색을 바탕에 깔고 나타났다. 인생 칠십을 넘어 팔심에서 바라본 어머니, 그의 사모곡잎 내년 전람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큰 허공에 담아내려는 게 최락도의 작품 세계. 스스로 ‘공허, 아니면 허공의 화폭’이라고 이름 붙였고, 비움으로써 비로소 채움이 완성되는 그 세계를 군산사람들과 함께 보기를 기다려 본다.(최락도 화백 전화 010-7917-0040)
채명룡 / 2018.07.26 16:0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