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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룡의 ‘길’ 이야기-4> “진보적인 예술인들의 군산행, 그리고 공공미술의 허실”

채명룡

  • 2018.09.05 09:15:29

<채명룡의 ‘길’ 이야기-4> “진보적인 예술인들의 군산행, 그리고 공공미술의 허실”

월명산 수시탑을 지나 지금은 철거된 해망동 산동네에 섰다. 여름에 큰 소리쳤던(바람이 많았기에) 해망동 사람들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월명공원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의도가 만들어 낸 일이지만 해망동의 애잔한 모습이 지금 남아 있었다면 근대역사경관지구와 어우러지는 도심형 관광 자원으로 각광받지 않았을까.

이 해망동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내려와 정착한 마을이었다. 피난민촌은 군산 여러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외부 사람들로부터 군산은 뿌리가 없는 고장으로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전통을 간직한 씨족 사회가 옛 옥구 지역에 지금도 건재하다는 걸 감안하면 뿌리론은 잠시 접어두면 좋겠다. 왜 하필 뿌리론이냐 하면, 일부 문화예술인들의 군산을 깔보듯 한 역사인식 때문이다.

군산의 뿌리는 옥구이며, 옥구군이 1997년 군산시로 통합된 이후 불과 20여년이 지났다. 도시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이 지역은 삼한시대 등 역사 이래 호남 서북단의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군산이 고향인 출향인들 중에서 문화·예술인들의 귀향도 잦아지고 있다. 시대상의 변화, 혹은 자리를 잡기 위한 새로운 물결로 이해한다. 하지만 군산은 문화예술이 크게 부흥되었던 곳은 아니지만 뿌리는 올곧게 간직해 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섰던 시기인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상당한 진통도 있었지만 개혁적인 생각과 진보적인 성향을 띈 예술가들의 활동도 눈이 띄었다.

레지던시라는 이름의 예술적 행위들도 많아졌고, 신진 예술가들의 프로젝트도 종종 벌어졌다. 물론 나름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런데 지역에서는 불만이 많았다. 본인들의 예술적 행위이자 성과라고 하는 데 할 말은 없지만, 그들은 여기에 무엇을 남겼을까.

해망동 998번지 일대, 필자가 밟고 서 있는 이 자리에서 2006년 가을 천야해일(天夜海日)’이란 이름의 프로젝트가 벌어졌다.

이 지역 글쟁이 시 몇 편을 골목이나 계단에 써 놓거나, 철거되는 집 모양을 방 한 칸에 만들거나 생활의 잡동사니들을 모아 놓거나, 그물을 이용해 햇빛 가리개를 만들거나 빨랫줄에 매단 런닝구에 안아줘라고 써 넣었다. 오가는 골목길에 잡초며 이름 모를 들꽃을 보물찾기 하듯 새겨놓기도 했다.

참여한 작가들은 힘들었겠지만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프로젝트 기획자에게 이게 공공 미술이냐고 물었고 자연스럽게 스러져 가는 게 이번 기획의 의도라고 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해망동 공공미술 몇 년 후 이 째보선창에서 비슷한 사업이 벌어졌다. 몰락해 버린 어판장을 이용해 만장이나 다른 예술적 행위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려는 작업으로 이해한다. 기획했던 방향대로 그렇게 되었을까. 혹시 어판장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받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진보, 혹은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일부 예술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란 방식의 군산 땅에서의 예술적 행위는 변해야 한다고 본다. 지역의 문화와 예술은 나름의 색깔이 있다. 잘나고 못나고 평가는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지역과 실제로 상생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부딪치거나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먼저 마음을 주고받는 생각과 함께 어려운 현실을 이겨나가려고 하는 지역을 위해 의미 있는 예술적 행위로 나가서야 한다. 진보적인 예술인들이 먼저 그렇게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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