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설화에서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다. 큰 아들은 우산 장수였다. 둘째 아들은 짚신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날마다 두 아들 걱정을 하며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날이 좋은 날은 큰 아들 우산이 안 팔려서 걱정이고, 비가 오는 날은 작은 아들의 짚신이 팔리지 않아서 또 걱정이었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그 어머니의 팔자가 바로 그런 팔자였다. 그러나 그럴 일이 아니다. 마음을 돌리고 생각만 바꾸면 날마다 즐거울 일이었다. 왜냐? 날씨가 좋으면 작은 아들의 짚신이 잘 팔리고 비 오는 날에는 큰 아들의 우산이 잘 팔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날마다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날마다 즐거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저 어머니와 같다. 그 어머니처럼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좋은 세상을, 기뻐해야 할 인생을 근심과 걱정으로 산다.
세상은 원래 기쁜 것이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 왜 구태여 얼굴을 찡그리고 앉아 근심. 걱정으로 보내려 하는가. 한 생각만 돌리면, 아니 마음만 한번 바꾸면 세상은 확 달라진다. 생각을 돌리고 마음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생각을 돌리고 마음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전개되고 달라진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나 보다. 천당도 지옥도 근심도 즐거움도 내가 만들어낸다. 죽어서 가는 곳은 아니다. 지금 찰라간에 알아차리는 기억들은 과거사 들이고 한 찰라 무심코 기억하는 일들이 나의 미래사가 되고 있음을 왜들 모를까!
지난 간 달의 기억이 떠오른다. 군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종강 시간이였다. 어느 덧 감회가 새로운 듯 눈을 지긋 시 감고 서 있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학생들도 역시 또 다른 감회에 젖어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학생들도 역시 말들이 없이 눈들만 꺼벅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강의실 안에 침묵을 쏟아놓고서야 슬며시 말문을 열어 “여러분 그동안 일생을 살아오면서 뭘 배우셨습니까. 앞으로 더 배우시렵니까?” 그러자 이 말뜻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여 한 학생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 때 나는 다시 채근(採根)하였다. 그 채근((採根)에 한 교육생이 불쑥 대답을 내놓았다. “음양 오행 철학과 인생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 대답은 틀림이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강의실 안에는 음양과 오행 철학인 사주학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갖가지 대답은 많았다. 좌우지간 입 가진 사람은 모두 한 마디씩이었다. 그래도 나의 고개는 옆으로 흔들었다. 아래로 끄덕이지는 않았다.
그때 대답이 바닥이 났는지 할 수 없이들 손을 들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여러분이 배운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세상 살아가는 이치들입니다.” “그럼, 세상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나의 물음은 그들에게 태산이었다. “여지껏 뭘 배웠는지도 모르는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항의성 대답이 드디어 나왔다.
그때 나는 흑판에 빙빙과세(氷氷過世) 어름어름 세상을 지내는 것이다. 라고 써 보였다. 정보가 많은 이 시대에 어름의 원리를 잘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송월 스님 / 2021.09.01 11:0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