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게 되고,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게 되고,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하는구나.”「증아함경」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는 극도로 타락된 도덕성의 회복 없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떤 희망도 기대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서 제 말은 앞세우는 사람, 남의 형편은 알아보지 않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사람, 자기는 높이면서 상대방은 낮추어 보는 사람, 자질과 뜻을 보지 않고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 덕은 베푼 일 일없이 덕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 무조건 존경받고 싶어 하는 사람, 남을 생각하는 체하며 교묘한 말로 속여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 제자들을 못되게 만드는 사람, 스승을 경멸하는 사람, 성인과 선지식을 비방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제일 천한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람이 사람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이기를 체념한 듯한 상황들이 날로 번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살인적인 횡포와 패륜적인 범죄가 밤낮 없이 발생하고 각종 비리와 무정, 퇴폐와 향락, 사치 등이 코로나19의 전염병처럼 만연되어 가고 있다.
더욱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이러한 잘못된 풍조가 이제는 정상처럼 굳어져 생활화가 되어버린 대신, 정직한 사람과 또는 인격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무능하거나 바보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사회의식과 풍조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오늘을 사는 인간들이 ‘우리’ 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지 않고 오직 ‘나’ 한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그에 따른 독선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남과의 관계를 떠나 혼자서 존재할 수도 없고 또 생존 할 수도 없다. 존재와 생존 그 자체가 이미 남과 이웃과의 뗄 수 없는 관계성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생각할 때 ‘나’ 하나만의 이익과 편의를 고집하는 병폐는 결국 자기에게 귀결된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따라서 ‘내’가 아니라 ‘우리’를 강조하고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가져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숭고한 정신 사상이나 대승적(大乘的)을 추구하는 종교적 이념도 ‘나’ 하나만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 보다는 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利他)정신을 구현하는데 있다.
그래서 나는 불교를 조용히 들여 다 보고 있다. 수행의 실천적 상징인 보살행은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남이 받는 괴로움과 슬픔을 덜어주고 벗겨주는데 먼저 손을 쓴다.
보살은 자신의 성불(成佛)을 뒤로 미루어 가면서까지 나 아닌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먼저 성불하여 부처님을 이루어질 것을 간절히 서원(誓願)하고 발원(發願)한다.
이러한 정신이 수행자들의 ‘우리’의 이익을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이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사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가 나를 생각하는 이기적인 미천한 마음을 버리고 서로가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거기에는 인간적인 신뢰와 희망과 살맛이 도는 사회가 이루어 질 것이다.
우리 모두 ‘우리’의 공동체 의식이 그립다. 멈추면 비로소 보여 질 텐데..!
송월 스님 / 2021.07.13 17: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