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별일도 다 있네.’ 어느 날 고속터미널에서였다. 내 옆에서 신문을 보던 분이 하는 말이었다.
내용을 알고 보니, 어느 교회에서 사나흘 앞으로 다가온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그게 별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별일은 매년 있는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여러 사찰의 일주문에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 합니다’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린다. 신문을 보던 그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별일’이라고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별일이랄 수가 없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같은 종교인 끼리 상대 종교의 성탄을 축하하는 일이 왜 별일이겠는가. 절대 별일이 아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또 화합과 친화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앙의 절대성 때문에 더러 일반 신자들이 종교 간에 갈등과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도 그렇지만, 같은 이슬람교 안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갈등과 불화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근래 우리 한국사회는 다 종교 사회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종교 간에 큰 갈등이나 불화가 없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끔 다소간의 갈등과 반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그것이 사회적 문제가 된다든가 종교 다툼으로까지 비화될 만큼 심각한 사정은 아니다.
사실 우리 종교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종교나 종교인들 간에 큰 갈등이나 알력을 빚은 일은 없었다. 서로 교통(交通)을 하고 대화를 하며 융화를 해왔던 것이다.
신라시대에 있어서 유불선의 융화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불교와 유교가 각각 국교로 되다시피 하는 가운데 유림들의 일방적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수난을 당했지만 스님과 선비들 사이에 종교문제로 크게 다투거나 시끄러운 일은 없었다.
근세사를 보더라도 국내 종교들은 비교적 융화를 잘 이루었다. 3.1운동 당시 모든 종교계 대표들이 의기투합하여 독립선언에 함께 서명한 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 지난 2002월드컵, 88올림픽, 평창동계올림픽, 남북정상 공동성명 등, 국내 각 종교단체들이 연합하여 그 유치를 위한 합동기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종교와 종교인들 사이에 융화와 친화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것이 종교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융화와 친화, 자비와 사랑의 구현이고 실천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종교단체와 종교인들이 서로의 성탄절을 축하해주고 축하를 받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절대 별일이랄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한 신도로부터 푸념을 들은 일이 있다. 그는 형제가 많았다. 부모 제사 때였다. 형제중의 한 사람이 자기 신앙을 앞 세워 기존의 제사법을 버리자고 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부모의 제사상 머리에서 가족들과 형제들 사이에 아주 보기 민망한 꼴이 되었다고 한다. ‘이거야 말로 별일이 아니랄 수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 서울 조계사 앞마당에서 어느 개신교 단체가 ‘연등행사를 취소’하라고 소란을 피워 경찰이 해산 시켰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종교평화와 화합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송월 스님 / 2021.06.09 14:1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