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세상을 살아가자면 고통이 전혀 없을 수가 없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일지라도 언젠가 한때는 고통을 받기 마련인 것이다.
어디 사는 일 뿐이겠는가. 태어나고 죽는 것 까지가 모두 고통이다. 고통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괴로움의 바다, 고해(苦海)라고 불렀다.
그러나 고통은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되면 반듯이 거기에는 근심과 걱정이 따른다.
오히려 고통보다 이 근심 걱정이 더 큰 문제다. 걱정을 사서 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근심과 걱정이 고통보다 사람을 더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마대사는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은 만일 고통을 만나더라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가르친다. 어떠한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걱정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근심하고 걱정하기보다는 그것을 조용히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달마대사는 그래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고통은 자신의 업보(業報)에서 오는 것이다. 자신이 지어서 받는 결과이기 때문에 자기가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고통이니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할 고통이며 그것을 근심하거나 원망할 일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닥쳐온 고통은 감수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참회도 따라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이 인과나 업보에 의해 온 것이라면 그 인연과 업보에 대한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참회하여 다시는 그런 결과로 ‘화살은 두 번 맞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스스로 다짐과 각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통에 대한 반성이고 참회다.
고통은 대개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되는 수가 많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도 무엇보다도 욕심을 경계하라 한다.
“욕심으로부터 걱정이 생기고 욕심으로부터 두려움이 생긴다. 욕심 없는 곳에 걱정이 없나니 또 어디에서 두려움이 있겠는가.”
역시 고통과 근심 걱정의 원인은 욕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을 위하여 근심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다.
비록 선의의 욕심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능력과 한계와 분수를 지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이 사라지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삶을 잠시라도 살아 갈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봉고불우(逢苦不憂)라, 고통을 만나더라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월 스님 / 2020.07.22 10:2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