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던가. 새와 매미 그리고 하루살이가 한 숲에 살고 있었다. 봄날 하루가 다 기울자 하루살이가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면서 떠날 인사를 했다. 그러자 매미가 그럼 내일 다시 만나자고 했다.
매미의 이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일이란 말을 이해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 여름 내내 나무숲에서 울던 매미도 그 여름이 다 가자 새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새는 매미에게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러자 매미도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내년이란 게 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자기 세계에 한계가 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의 세계 밖에 모른다. 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사고 있는 세계 외 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은 영원하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하다. 이 시간의 영원성과 공간의 무한성을 아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이를 알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아직 보이지 않는 먼 앞날과 세계 인류의 공동이익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정진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은 영원하고 세계는 무한하다는 것은 진리다. 이러한 진리를 인간은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
체험이란 진리의 발견이다. 진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각오와 오랜 정진과 깊은 사려 그리고 그에 따른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다.
군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장에서 전쟁이 있을 때마다 많은 전사자를 목격했고 심지어는 전우의 시체를 자기 등으로 업어다 매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제대로 체험하게 되는 것은 오랜 뒤 자기 어머니의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죽음의 참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늘 꽃을 보고 산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렇게 꽃의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거기서 우주의 질서, 즉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꽃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진리의 체험이다. 체험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 가운 데 하나이다. 그래서 인간은 음식물을 의지해서 살아가지만, 인생은 체험에 의해서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것을 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착각과 가면과 허례 때문 일 것이다. 그것들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법구경에 있는 글이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 나그네에게 갈 길은 멀다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 아아, 생사윤회의 고통은 길고 멀어라.” 진리, 즉 바른 길이란 사람이 가야할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찌 고뇌와 고통이 따르지 않는가. 진리를 알고 그 것을 체험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의 한계와 착각에서 벗어나 참 된 삶을 살수 있다는 사실이다.
송월 스님 / 2020.06.25 16:5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