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어야 했다. 엄마와 단 둘이 따로 살 집을 마련하고 엄마의 치료비를 감당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낮에는 광고회사 경리로, 밤에는 술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생부에 대한 기억은 애초부터 지후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짐작한 것이지만 엄마는 지후를 가지면서부터 미혼모가 되었던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생부에 관해 엄마는 말해주지 않았고 지후도 묻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묻고 싶은 때가 여러 번이었지만 그때마다 지후는 용케 참았다.
술집은 초저녁부터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언제부터인가 불금 대신에 불목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지후는 서빙 담당이었다. 손님이 오면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나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몇 살?”
50대로 보이는 남자 넷이 맥주를 마시는 테이블에서 일행 중 한 명이 지후에게 물었다. 지후는 대답하지 않고 맥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돌아서 주방으로 향했다. 나이를 말하면 그다음엔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어이, 아가씨. 아버지 같은 어른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안주를 가져갔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후는 안주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그때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이 지후의 손목을 잡아챘다. 순간 지후의 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심정이 끓어올랐다.
“놓으시죠?”
지후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따, 이 아가씨, 무섭네 잉.”
그는 동료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지후를 자극했다.
“어이, 아가씨. 내가 아가씨한테 연애를 하자고 했어, 아니면 같이 자자고를 했어? 앙?”
지후는 말없이 그를 쏘아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야! 그렇게 째려보면 어쩔 건데? 앙?"
"이거 놓으라고요!"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지후가 소리치듯 말하며 강하게 남자의 손에서부터 손목을 빼내려 힘을 썼다. 하지만 남자는 손아귀에 힘을 더 가했다. 금방이라도 지후를 때리기라도 할 기세였다. 동료들이 일어나 만류했지만 사내는 이미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지후를 향한 적의와 공격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것이 다 있어?”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지후도 물러서지 않고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뭐라고? 이런 건방진 년이!"
사내가 욕을 내뱉으며 손을 들어 지후를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다음 순간 지후가 온 힘을 다해 몸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공격에 사내는 지후의 손목을 놓치며 비틀거리더니 고꾸라지고 말았다. 지후도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 얼떨결에 당한 사내의 욕지거리와 동료들이 가세한 고함소리가 시끄러운 손님들 소리와 음악 소리 사이로 들려왔다. 바로 그때, 술집 출입문이 열리더니 경찰관들이 들어섰다. 두 명의 남자와 여자 한 명의 경찰이었다. 일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경찰관들 쪽으로 쏠렸다. 손님 테이블에 앉아있던 지배인이 경찰관들이 서있는 카운터 쪽으로 가서 용건을 물었다. 경찰관 중 한 명이 지배인에게 물었다.
"여기 일하는 직원 중에 강지후씨라고 있나요?" (1부 끝)
이현웅 / 2020.12.09 15:5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