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지후가 경리로 일하는 광고회사의 퇴근시간. 언제나처럼 지후의 마음은 분
주하다. 저녁을 같이 먹자는 동료의 제안을 거절한 지후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자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주민들의 운동과 휴식을 위한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철물점 옆으로 난 골목길을 200미터 정도 갔을 때 계단을 만났다. 거기에서부터 달동네가 시작된다. 아무렇게나 빚어놓은 것 같은 거친 시멘트 계단의 막다른 길에서 오
른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사람 한 명이나 겨우 다닐 정도의 비좁고 위험한 길이 지후를 맞이한다. 이곳저곳에서는 개발 사업을 위한 공사가 한창 중이고 이미 이사를 가고 난 빈 집에서는 전깃줄이 꼴사납게 삐져나와있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집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위태롭다. 고양이 한 마리가 빈집에서 나오다가 지후를 보고는 얼른 다시 안으로 도망쳤다.
비탈진 동네의 경사가 높아 계단을 올라가는 지후의 숨이 찼다. 미로와도 같은 골목골목을 이리저리 빠져나와 달동네의 맨 꼭대기에 올랐다. 6시 15분. 올라온 비탈길 옆으로 난 또 다른 골목길로 내려가 꼭대기에서 세 번째 집 빨간 양철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대여섯 평 될까 말까 한 마당을 지나 허름한 미닫이문을 열었다.
저녁 밥상을 차리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여는데 방문이 열렸다.
"왔어?"
어두운 방에 누워있던 엄마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지후의 일과는 늘 똑같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거동을 쉽게 하지 못하는 엄마 밥을 차려주고 7시에 시작하는 저녁 아르바이트를 위해 서둘러야 한다. 국을 데우고 상을 차려 방으로 들어가 엄마를 일으켰다. 엄마에게 숟가락을 쥐어주고 난 후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다 먹고 한쪽에 밀어 놔. 설거지한다고 넘어지지 말고." (계속)
이현웅 / 2020.11.27 09:3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