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 (2)-2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현우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얼마의 돈과, 회사 사무실 보증금을 합하면 절반은 되었다. 나머지 절반은 몇 사람에게 부탁을 하면 될 것 같았다. 먼저 죽마고우 윤호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이 아닌 윤호라면 해줄 것만 같았다.
같은 마을에 태어나 지금까지 변함없이 우정을 지속해온 두 사람은 형제와 다름 아니었다. 지난 50여 년의 세월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온 막역한 사이였다. 처음으로 돈 얘기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윤호라면 분명히 해줄 것이라고 현우는 의심하지 않았다. 나이 60 될 때까지 열심히 돈 벌어 고향 마을에 나란히 집 짓고 여생을 함께 보내자는 굳은 맹세까지 한 사이였다.
"현우야, 니 딱한 사정은 알겠는데... 나는 우리 사이에 돈문제가 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야."
얼마나 필요한지조차 묻지 않은 윤호가 그렇게 말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쉰둘에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한 사실을 처음으로 부끄럽게 생각했다. 생사를 같이 할 수는 있어도 우정을 위해 돈 문제는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지만 그보다는 살아오면서 그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괴로웠다. 열심히 돈 벌어서 나란히 근사한 집 지어 여생을 함께 보내자고 말하곤 했던 자신이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윤호는 무슨 생각을 하며 맞장구를 쳐줬을까. 그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으리라. 차라리 말을 하지나 말 것을 하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더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하청업체 사람들에게 기다려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정대표는 왜 이런 일을 벌이게 된 것일까. 이 정도의 돈은 스스로 조절할 능력이 있었을 텐데. 혹시 도박에 빠져있는 걸까? 아니면 무슨 말 못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현우가 정대표의 횡령 이유를 이리저리 생각하며 추측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들도 나름 예의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이른 아침에는 조용하던 전화기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현우는 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우는 또 다른 나쁜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내려 회사 출입문에 이르렀을 때 문 앞에 있는 설비업체 김사장의 모습을 보았다. 회사문은 잠겨있었다. 이미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난 시각이지만 신미숙 과장은 출근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현우는 마음이 서늘했다.
신과장이 판단하기에도 회사는 회복이 어려워 보였을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그녀가 험한 일들을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 출근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출입문 도어록의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계속)
이현웅 / 2020.08.13 14:3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