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라도 하는듯한 노신사의 말에 제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또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침묵을 깨뜨리며 노신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이사장! 일전에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마소."
"어르신 별말씀을요."
"이사장 보면 아들 같아서 그런 거니까 너무 섭섭해 하지 마소."
아! 아들 같아서! 가슴이 콱 막혀오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 그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노신사에게서 느꼈던 낯익음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바로 제 아버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열네 살 겨울에 세상과 작별하기까지 어린 저에게 아버지는 늘 무섭고 투박한 분이었습니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 바깥 풍경 한 번 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시던 그 날까지 어린 자식에게 한 번은 보여줄 법도 한 옅은 미소 한 번 보여주지 않았던 아버지였습니다.
어린 저에게의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동무들에게도 아버지에 관해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늘 저의 허물에 대해 관용보다는 타박과 매정함으로 일관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제 곁을 떠난 후,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늦은 깨달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게 했습니다. 지금의 이 나이에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같이 느꼈다는 노신사의 말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분의 말투와 표정이 왜 그리 낯설지 않았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사장!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하소. 그러다 보면 단골들이 많아질 게야.”
눈이 뻑뻑해왔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입술이 떨렸습니다. 왈칵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한 번 쏟아진 눈물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어르신…….”
“아마 전화도 잘 못할 게야. 하긴 나 같은 늙은이 잔소리 안 들으면 좋지 뭐. 암튼 열심히 잘해봐! 이만 끊소.”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전화가 끊기고 말았습니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겨우 어르신을 불러봤지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유도 모를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림을 노신사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 사이 노신사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알았을 때, 저는 흐느껴 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의 정체를 지금도 확연히 알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열네 살 어린 나이부터 수 십 년 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들 때문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거기에 가족들의 돌봄도 없이 홀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야 하는 쓸쓸하고도 처량한 노신사 손님에 대한 연민이 더해져 그렇게 울음이 났나 봅니다.
오늘, 저는 노신사 손님과 아버지를 생각하며 김진호의 <가족사진>을 선곡합니다.
이현웅 / 2020.04.03 15: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