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차 좋네. 몸에 좋은 대추차 한 잔씩 하자.”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던 기침이 잦아들자 노신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노신사 손님과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주로 노신사 손님이 이야기를 하는 쪽이었고 저는 듣는 쪽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젊은 시절에 다녔던 서울 종로 일대의 음악다방과 음악감상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노신사 손님이 우리 카페에 오시게 된 것도 카페 밖에 걸린 스피커에서 나는 음악 소리를 듣고 옛 생각이 나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종로와 광화문 일대의 음악다방은 다 꿰고 있는 듯 줄줄 나열하면서 그 음악다방 각각의 특징까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다행히 기침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일에 신명 나서 말하는 것처럼 노신사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음악을 상당히 깊이 있으면서도 다양하게 듣고 좋아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분에 관한 궁금증이 커져갔습니다. 현재 앓고 계시는 폐암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가족들은 있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 등의 신상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봄날은 간다 한 곡 틀어봐!”
마치 제 속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느닷없이 음악을 신청하시더군요. 그러고는 또다시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토해지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새가 날면 새가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어르신 댁은 어딘가요?”
노신사의 신청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가까운데 살어.”
“가족분들은…….”
“혼자 살어”
“아…….”
“할마이는 삼 년 전에 먼저 갔어.”
“아… 그럼, 자녀들은….”
“자식? 남매 뒀는데 아들놈은 지 엄마보다 먼저 가버렸어. 자식 죽고 할마이도 시름시름하더니 가버렸지.”
“아…….”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기 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으네…….”
쓸쓸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노신사 손님의 표정에는 짙은 비애감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이현웅 / 2020.03.19 09: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