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LP 레코드를 뒤적거리며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출입문보다 먼저 들려온 소리가 있었습니다. 고함소리였습니다.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봤습니다. 음악실 정면에서 노신사 손님이 저를 바라보며 소리를 치고 계셨습니다.
음악소리 때문인지, 아님 노신사의 너무 빠른 말 때문인지, 무슨 내용인지는 확실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분이 언짢아졌습니다. 그분의 표정이나 손동작을 볼 때 유쾌해할 만한 내용이 아닐 것으로 짐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피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겠다 싶어 음악실을 나와 손님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리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정중함을 유지하며 말을 했습니다.
“음악 소리가 너무 작아! 음악 소리가 가슴을 쾅쾅 울려야는데 그러지를 못해! 당장 스피커 바꿔!”
노신사는 과장과 억지를 담은 듯한 호통을 쳤습니다. 사실 음악 소리는 결코 그렇게 작지도 않았거든요. 스피커도 손님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었고요. 하지만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얼른 그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신사는 조명이 어둡다, 쌍화차는 왜 없느냐, 주인이 왜 자리를 비우느냐는 등등의 몇 가지를 계속 나무라듯 지적했습니다. 저는 싫은 기색을 감추려 애쓰며 건성으로 대답만 열심히 할 뿐이었습니다.
“에이, 다시 오고 싶지 않아!”
노신사 손님은 그렇게 말하시고는 휙 하니 몸을 돌려 출입문을 향했습니다. 저는 잘됐다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도리라도 해야겠다 싶어 출입문 밖까지 따라 나가 배웅 인사를 했습니다.
“뭐 하러 여기까지 나와? DJ가 체통이 있어야지!”
아, 어쩌란 말인가요! 노신사 손님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연신 혀를 차는 말투로 불만이 가득한 혼잣말을 쏟아냈습니다. 언짢아진 저는 노신사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은 뒤에야 카페로 들어섰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시 오고 싶지 않다던 노신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바라던 바라고 속으로 생각했죠. 음악실에 들어왔는데 상한 기분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왠지 그분에 대한 느낌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하여 어디에선가 뵌 적이 있다거나 어떤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다시 오지는 않을 거라는 그 한 가지 예상만으로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봄은 서서히 무르익어 갔고 카페에도 점점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노신사 손님의 기억은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주나 지나갔지만 예상대로 카페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단 한 번의 방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으로 카페 일기장에 기록되는 듯싶었습니다.
이현웅 / 2020.03.04 15:4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