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가장으로 산다는 것
문득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잠에서 깨어나 보니 캄캄한 밤인데 아무도 없고 혼자라는 생각에 울컥할 때가 있었나요? 몸이 아픈데도 곁에서 돌봐줄 사람 하나 없다는 생각으로 서러운 적이 있었는지요?
철우 씨의 집과 가족은 서울에 있습니다. 그는 군산에 있는 직장에서 근무합니다.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명퇴 대신 군산행을 택했답니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가족을 보러 서울에 올라가는데 이번 주는 가지 못했습니다. 지독한 감기 몸살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번엔 당신이랑 지은이가 내려오면 안 될까?"
주말이 가까워오는 데도 차도가 없어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며칠 동안 먹는 것도 거의 없어 몸은 기진맥진하고 도저히 서울까지 갈 힘이 없어서였습니다.
대답은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딸과 함께 음악회에 가기로 했답니다. 음악회 가는 것을 취소하거나 다음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철우 씨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철우씨는 입맛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토요일 저녁, 약을 먹기 위해 억지로 밥을 먹었습니다. 집 앞에 있는 국밥집에서 욱여넣듯 밥을 먹는데 괜스레 처량하고 서글픈 생각이 밀려옵니다. 온몸은 흠씬 두들겨 맞은 듯 뼈마디까지 아픕니다. 약기운 탓인지, 감기 몸살로 인한 것인지 몽롱한 느낌과 함께 잠이 밀려옵니다.
잠에서 눈을 떴을 때, 철우 씨는 아내와 딸이 있는 서울 집이라고 착각합니다. 몇 시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혼자임을 알아차립니다.
온몸은 땀범벅입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여명의 하늘이 보입니다. 순간적으로, 전에 없던 감정의 덩어리가 솟구치는 것을 느낍니다. 가슴을 치밀고 올라오는 그것은 목울대를 지나 눈시울에까지 이릅니다.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방금 본 영상처럼 떠오릅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일찍부터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때부터, 삼십 수년 동안 짊어져야 했던 고단함의 무게가 오늘따라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지금의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고졸의 학력으로 견뎌야 했던 고충의 시간도 떠오릅니다. 은근하면서도 치졸한 무시와 차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아내와 딸을 향한 가장의 역할이었습니다.
지독한 장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포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죽어라 열심히 일했습니다.(계속)
이현웅 / 2019.11.27 17:3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