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내 말투는 분명 딱딱했을 것이다. 남자는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무슨 말인가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계산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 술에서 깨지 못한 비척거리는 모습으로 지갑 속의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넨 남자는 배웅 인사를 위해 계산대 옆에 서 있는 나를 향해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잔액 부족인데요?”
그의 인사에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던 내 귓전을 파고드는 직원의 목소리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이걸로.....”
그가 건넨 다른 카드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포스 화면에는 잔액 부족 메시지가 떴다. 그 순간, 직원은 직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둘 다 무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누구보다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안절부절못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면서 얼른 음악실 안으로 피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은 거의 울상이 되어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사장님... 제가 내일 꼭 갖다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여전히 취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네네… 아니, 그냥 다음에 오실 때… 아니 그냥… 오늘은 제가 대접한 걸로…….”
“아닙니다! 그건 안 됩니다! 제가 내일 꼭 갖다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내 호의를 단호하게 자르고는 여전히 허리까지 숙여 절하듯 인사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 또한 여전히 어찌할 줄 모른 채 괜찮다는 말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며 맞절을 했다. 남자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더 고개를 숙이며 내일 꼭 갖다 주겠노라는 약속을 남긴 후에야 몸을 돌이켜 출입문을 향했다. 그렇게 그 남자는 음악이야기 카페의 첫 방문을 끝내고 처음 들어왔을 때의 모습으로 떠나갔다.
남자가 떠난 후, 직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기분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우울함의 엄밀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 손님, 목도리 놓고 가셨는데요?”
테이블을 정리하던 직원이 의자에 놓여있던 목도리를 집어 들며 말하기가 무섭게 나는 낚아채듯 목도리를 받아 들고 밖으로 부리나케 나갔다. 계단을 뛰어 1층 출입문을 밀고 나가 건물 앞 인도를 좌우로 살펴보았지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깊은 겨울 밤바람이 불어와 살을 에이는 듯한 맹렬한 추위를 느끼며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건너편 인도, 차도 쪽을 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후문으로 나갔나 싶어 건물 뒤편을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건물을 중심으로 블록 전체를 완전히 돌아보았지만 끝내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계속)
이현웅 / 2019.05.01 09:4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