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KBS에서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누가 누가 더 잘하나”라는 동요 부르기 대회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그 타이틀을 참 좋아했다. 모두가 다 잘하는 중에서 더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니, 그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해도, 아주 많이 못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A는 한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다. B는 두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다. 이 두 사람을 두고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를 뽑는다면, 당연히 B가 더 나쁜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을 두고 이번에는 누가 더 착한 사람인가를 뽑는다면 당연히 A가 더 착한 사람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을 두고서 변하지 않는 결론은, A는 B보다 착한 사람이고, B는 A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투표를 하지 않고 보면 A와 B는 다 같은 살인범일 뿐이다. 그러나 A는 늘 B를 보면서 ‘세상에 어떻게 저런 나쁜 놈이 있을 수 있냐, 인간으로서 어찌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이나 죽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지도 모른다.
부부싸움을 한 어느 한쪽이 자녀한테 응원을 청할 때가 있다. “네가 봐도 엄마가 나쁘지?” 당연히 아이가 아빠 편을 들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의 대답은 정 반대다.
“아니, 내가 보기에는 아빠가 더 나빠.” 그 말을 들은 못난 아빠는 이제 아이와 싸우자고 덤비거나, 왜 엄마가 더 나쁘고 자기가 착한지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이의 생각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보기에는 엄마나 아빠가 다 똑같이 잘못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아빠가, 더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하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이 정권은 모든 국민이 언제나 자신들에게 지지를 보낼 줄 알았다. 자기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설마 박근혜 정권보다 더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은 아무리 잘못해도 위에서 말한 A가 되면 되는 것이었다. 언제나 자기보다 더 나쁜 B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당연히 A를 지지해야 옳은 것이었다. 절대로 A가 B보다 너 나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더 착한가에 투표를 할 수밖에 없어서 부득이 A를 선택해줬는데, 이제 A는 B보다 덜 나쁜 사람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어서 기고만장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봐줄 수가 없다.
그리고 네가 “더 나빠”,라는 말에 이 정부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아빠가 더 나빠”라는 말을 들은 아빠는 아이를 설득하려 들지 말고,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박근혜 정권보다 더 나쁘다는 말이냐?”라고 생각하며 국민을 설득하려 들지 말고, 왜 그런 말을 듣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 채 국민 누구도 관심 없는 일로 날을 지새우는 저들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못하는 저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좀 나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참 잘하는 저들보다 더 잘하는 그런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인가?
남대진 / 2021.07.07 10:2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