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꾸짖는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꼭 한 마디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나 죽으면 이 모든 것이 다 네 것이지, 내가 죽을 때 가지고 가냐?”
그러나 잔뜩 기죽은 아이는 결코 그런 부모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만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선거철이 되면 출마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당선되면 시민의 심부름꾼이 되어 손과 발 노릇을 하겠다고 머리를 숙이고, 시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한다.
몇 년 전, 그렇게 다짐하고 약속하며 재차 당선된 시장을 만나야 할 일이 참 많았었다. 현재의 시장을 말함이 아니다. 그러나 시장과 면담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서실을 통해서 간청하기를 여러 번 만에 겨우 성사되는 약속이지만, 방문 인원을 제한하고, 대화의 주제를 미리 설명해야 한다. 더구나 시장실 입구는 늘 건장한 체구의 청원경찰 여러 명이 지키고 서서 노려본다.
겨우 들어가 마주 앉은 시장의 얼굴은 못마땅함과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비서가 내주는 찻잔을 들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 우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노기 어린 시장의 음성이 튀어나온다.
“무슨 말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여러분이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다 안다. 그러나 시정을 책임진 사람은 시장이다. 시장은 시민을 사랑한다. 시장이 다 어련히 알아서 하는데 왜 딴지를 거냐…?”
그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외출을 핑계 대거나 다음 면담 차례를 이유로, 내몰리듯 그렇게 시장실을 나온다.
요즘 국회 대정부 질문을 보면서, 초선으로서 전체 의원 중 부동산이 제일 많은 어느 의원이, 국무총리대행에게 질문하면서 한 말이 지워지지 않는다.
“부동산값을 시민이 올렸습니까, 정부에서 올렸습니다.”
정부에서 부동산 업자들 들쑤셔서 값을 올리러 다녔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지금 나한테 질문하는 겁니까? 그럼 이리 올라오세요, 내가 그리 내려갈게요.”
“지금 나를 가르치는 겁니까?”
왜 그리 표독스러운 표정과 말투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원래의 일상이나, 가정에서도 그런 말과 표정으로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이 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선배들한테 교육받은 것인지 참 궁금하다.
그들은 늘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질문에 대한 답은 국민에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누가 하는 것인가, 역시 국민이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총리한테 질문한다면 그렇게 무례한 표정과 태도로 질문하겠는가?
그런 태도를 보면서, ‘저 국회의원이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을 들으며, 진짜로 상담원이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영혼을 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하물며, 무례함이 가득한 ‘사랑’을, 누가 사랑이라고 말할 것인가!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은 것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 인정할 때 비로소 사랑이 되는 것이다.
남대진 / 2021.04.28 13:5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