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희망
여종 주인들이 짜서 고소하는 바람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다. 사건 발단의 원인을 성경이 밝힌다. 이유는 돈벌이 소망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행 16:19).
점치는 귀신이 나간 후 여종은 회복되었다. 다시는 점을 칠 수 없게 되었고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장터, 즉 광장으로 끌고 간다.
당시 광장에 ‘아고라’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서 회의도 하고, 재판도 한다. 재판관에게 끌고 가서 소란죄로 고발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골칫거리였다. 일 년 전에 황제 클라우디오는 로마에서 사회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반란을 꾸민다는 죄목으로 모든 유대인을 추방했다(행 16:20-21).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란죄를 바울, 실라에게 물었다. 주변 사람들도 동조한다. 치안판사는 옷을 벗기고 태형을 명령한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다.
결국 돈 때문이다. 주인들의 관심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돈이다. 귀신에 사로잡혀 불행한 삶을 살던 불쌍한 인간이 귀신 떠나고 회복되어 인간답게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쁠까? 주인들에게는 아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돈만 보인다.
사람과 돈, 무엇이 먼저?
인터넷 한 사이트에서 물었다. 사람이 먼저일까? 돈이 먼저일까? 무엇이 먼저일까? 올라온 두 개 댓글이 대조적이다.
사람 죽으면 돈이 무슨 상관인가? “당연히 사람이 먼저죠. 뭐 그리고 돈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또 다른 댓글이다. “물론 사람이 먼저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돈이 먼저다. 돈 있을 땐 친구도 여자도 권력도 다 얻지만 돈 없으니 다 등 돌리고 간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먼저다.”
돈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민감하다. 돈 없이 살 수 없다. 돈 있다고 다 사는 것도 아니다. 돈이 있어 행복하기도 하지만 돈이 있어 불행해지기도 한다.
돈이 있어 감사하기도 하지만 돈이 있어 감사를 잃어버린다. 돈이 없어 불행한 사람도 있지만,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돈에 대한 태도
성경의 관심은 돈이 많아 부자인가? 돈이 적어 가난한가? 에 있지만 않고, 돈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 관해 말해준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가? 돈을 종으로 부려 먹나?
프랑스 사상가 작크 엘룰은 말한다. “돈 자체는 죄악이 아니다. 그런데 돈에는 신적인 힘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돈이 주인 되면 나는 돈의 노예로 산다. 돈 종이다. 돈 앞에서 쩔쩔맨다. 돈이 상전이다. 돈이 하인이 되면 나는 돈의 주인, 돈 주가 된다. 돈을 마음대로 부려 먹는다.
어떤 분의 말이 공감이 간다. “내 신앙고백은 사도신경이지만 실제적 삶에서의 신앙고백은 내 금전출납부이다.” 손을 가슴에 얹고 신앙고백을 외우는 것만이 신앙고백이 아니다. 매일 돈을 어떻게 대하느냐? 내 신앙고백이다.
교회 신앙고백 역시 어떻게 재정을 쓰냐가 교회의 신앙고백이다. 의미 있는 말이다.(계속)
차상영 성광교회 담임목사 / 2022.02.10 11:4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