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
탁류와 함께 낡아져 갔던 고깃배를 댔던 쇠기둥 고리, 생선 담던 나무상자, 대나무 깃발, 스치로폼 부이 등등 선창의 갖가지 물건들이 눈에 밟혔다. 그들은 늘어졌고 숨은 턱에 찼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낡아졌다고 해서 사람마저 그런 건 아니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스산한 강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던 선창 사람들의 마지막 자존심일까. 선창을 뒤에 놓고 기계소리 요란한 공업사 네거리 골목을 지나 일제 강점기 영통으로 향하던 째보선창 옆 개천길을 따라 걷는다.
실개천은 복개가 되어 지하 밑을 흐르고, 냇물이 눈에서 사라지자 지명마저 점점 멀어져 갔다. 이 스산한 골목을 따라 소설 탁류의 주인공 정주사가 서천 용댕이에서 가솔들을 이끌고 여기에 닿았으며, 아이들을 앞뒤 세우고 휘적휘적 둔뱀이(둔율동) 초막으로 넘어 갔으리라.
왼쪽으로 철도시설공단의 담이 쳐져 있고, 담 아래 누군가 잽싸게 푸성귀며 여러 가지 채소를 갈아먹고 있었다. 그렇구나, 이 도심 속 외딴 섬에서도 사람의 온기가 살아 남새밭처럼 척박한 환경에서도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구나, 생각한다.
항만과 세관을 드나들었던 철로가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철길 가장 자리에 생선을 담아 두었던 나무 상자들이 그득하다. 철로는 멈춰선지 오래이어서 온갖 잡초며 생활의 파편들이 널려 있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 쓸모가 다하면 이렇게 잊히거나 가로 누워 멀뚱멀뚱 하늘만 바라보겠거니 생각한다.
철길 주변의 식당들은 대부분 어장을 하거나 어업이나 도소매업을 같이 했던 집들이었다. 아복집이 그렇고 선창아구집도 마찬가지였다. 맛의 구 할이 결정된다는 좋은 생선을 쓸 수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맛 집으로 소문날 수밖에.
이 주변 식당들은 대부분 주인네 인생과 함께 나이를 먹어 왔다. 그래서 이 골목의 식당들은 줄잡아 20~30년은 기본이다. 그것도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선창 주변에서 세월과 사람이 익어갔고, 오늘도 그 원숙한 세월의 흔적을 하나씩 드러내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서자 허옇게 배를 드러낸 생선들이 길 바닥 한 켠에 누워 있다. 이 근처는 햇볕이 잘 드는 자리면 그물을 이어댄 건조대에 생선들이 배를 드러내고 눕는다. 펄떡이던 그들의 생애가 이렇게 바람에 익어가고 있으니 참 애달프다. 녀석들은 이렇게 익어 어느 식탁에 올라 맛난 저녁 반찬이 되리라.
조금 더 가자 식당 하나가 나왔다. 이름도 예쁜 미정식당이다. 주인네 마음씨도 이름처럼 곱거니와 차려 내는 음식 또한 ‘미정미정’이다. 이 선창의 주변을 따라 난 골목을 걷노라면 바람 한 점, 다가오는 햇볕 한 올, 모두가 그립고 정겹다.
채명룡 / 2018.10.22 19:3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