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철 뭉치들과 변해가는 상점들>
금강 하구를 돌아보자니 망가진 어선들이 눈에 밟힌다. 썰물 땐 그렁그렁 괜찮았었다. 그런데 물이 들어오자 반쯤은 물에 잠긴 채, 또 반쯤은 세상 시름 엎어놓은 듯 벌렁 누워있었다. 애써 외면하며 한걸음씩 천천히 걷는다.
강물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세상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는 먼 길 떠나온 시간들의 시련과 아픔과 슬픔과 눈물을 애써 감추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스라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내는 게 바로 항구의 운명이다. 이 선창 또한 마찬가지였다.
금암동 뒷골목, 대나무 어구 상회
사람따라 사연이 생기고, 사람이 모여야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법이라는 걸 선창의 철공소 건물을 기웃거리면서 깨닫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굳건한 신념처럼 자리 잡은 철공소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철을 다룬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힘든 세월을 이 선창과 함께 견디어 왔다는 사실을 철공소 옆에 기대 누운 거대한 철뭉치들을 보면서 무릎을 친다.
그렇구나, 말 못하는 철뭉치들도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내놓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왁자하니 떠들던 바다 사나이들은 없어졌어도 이 서해캬바레 근처는 그 날의 흔적들을 남겨두고 있다. 귀향의 약속을 지키듯이 수리를 위해 찾아든 크고 작은 배들이 애처롭다.
그러나 어떠랴. 아픈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치유되듯이 이 배들도 철뭉치들을 다스리는 철공소 장인들과의 한 판 씨름을 거치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받게 될 터이니 말이다.
낡은 건 버리는 게 아니다. 그냥 지켜보고 안쓰러워 해주는 게 낡음에 대한 예의이지 않을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캬바레를 지나 왼쪽으로 굽어졌다. 지금도 대나무 어구를 팔고 있는 선구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은 중앙식당, 또 그 옆은 유락식당이다.
동부어판장 선창의 고장난 선박들
이 선창에서는 그 예의를 차려주는 일 또한 즐거운 추억이다. 소설가 채만식이 낭만적이지만 바늘 끝처럼 날카롭게 일제 강점기의 혼란과 허술했던 가치관과 몰락해가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탁류’속에 풀어놓았듯이 오늘의 이 선창 또한 허술한듯 해야 즐거움이 돋아난다.
철뭉치들과 낡은 시멘트길과 세월에 묻혀가는 선구점과 아나고 탕이라는 군산의 입맛들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선창길이다.
채명룡 / 2018.09.18 19:4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