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은 세월의 흔적, 철공소>
시멘트 바닥에 꽂아 놓은 묵직한 철 고리를 발끝으로 툭툭 차본다.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아련한 추억의 꼬리에 비늘을 달아맸다. 햇빛에 반사되어야할 것들이 한 겹씩 스스로를 감추고 있다. 거대한 돌덩이 같은 철 구조물이나 시멘트 포장이나 낡은 건물의 창문이나 모두가 제 색깔을 잃어버렸다.
오돌토돌 어설픈 길을 걷는 건 조심스럽다. 바닥을 디디면서 뭔가 아련하고 쓸쓸하고 허전한 아픔이 가슴 속으로 밀려들었다. 새까맣게 몰려들던 어선들을 고리에 걸어두었던 굵은 밧줄의 무용담은 이제 먼 옛 이야기이다.
(사진설명 : 기계 공작소 안쪽에서는 늘 이렇게 바쁘게 움직인다)
오래된 흔적은 시멘트 색깔에서도 나타난다. 사람으로 치자면 멀숙하게 차려입었지만 얼굴이나 팔이나 검게 그을린 시골 아저씨의 모습이랄까. 말끔하게 분칠한 얼굴이 아니라 어두침침하고 어딘지 칙칙한 표정이다.
심심풀이 오징어 한 마리를 씹으며 걸어가는 째보선창, 바람도 오늘은 한가롭다. 그렇다고 속까지 한가로운 건 아니다. 아픔과 시련은 겹쳐 오듯이 이 선창의 깜깜한 앞 날 또한 그렇다.
(사진설명 : 서강 기계 골목에 내놓은 엄청난 크기의 공작 기계 )
여기서부터는 선박의 엔진과 스크류, 철제 구조물, 닻 등을 만들어주는 공업사들과 선외기 수리점이 즐비하다. 철제로 된 문을 내린 현대디젤 바로 옆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왔던 하꼬방 크기의 가게가 아직도 문을 열고 있다.
기름 냄새를 어께 뒤로 넘기면서 걸어가 보면 여수스크류, 현대선외기 엔진, 동부공업사, 문일공업사, 광일스크류, 커민스, 대진고속 등이 세월을 비껴 선 채 나름 영역을 지키고 있다.
귀향은 사람만 하는게 아니다. 고치고 때웠던 선박들은 나름의 치수를 찾아 예전의 수리점을 찾는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왼쪽으로 굽어져 돌아갔다. 서강기계 앞엔 길 가장자리에 거대한 쇳덩이로 만든 기계 장치가 놓여있다.
(사진설명 : 선박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만들어 주는 공업사)
웬만한 기중기로는 들기도 어려워 보이는 크기와 눈짐작되는 무게에 압도당한다. 들기도 어려웠을텐데 어떻게 그걸 이 자리로 옮겨 왔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녹물이 흘러 내렸던 아린 시간의 상처를 바라본다. 쇳덩이와 근처 아스팔트는 군데군데 붉게 물들었다. 외롭고 쓸쓸했던 세월의 상처가 이렇게 빨갛고 후줄근한 색깔의 핏물을 내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장 안에서는 쇳덩이를 갈아내고 용접해 붙이는 철공소일이 한창이다. 씨~앙 날카롭게 돌아가는 쇳덩이 갈아내는 소리, 불똥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사람의 삶이란 이런 시끄러움 속에서도 잘 자라난다. 언뜻 형님 하고 작업복 입은 남자가 부르자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텐데 부르는 쪽을 바라본다. 무슨 텔레파시가 통하고 있을까.
채명룡 / 2018.08.27 18: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