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흔들 걸어가는 ‘탁류길’>
일자로 난 선창의 길은 외롭다. 사람 냄새가 끊긴 이 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물이 빠지면 마치 어느 노숙자의 헤진 외투처럼 허접하고 눈 둘 데가 없지만, 낡아서 눈길이 가고 눈길을 좇아 가다보면 어느새 아련해지는 선창길이다.
바람 따라 외로움이 떠밀려 온다. 외로울 땐 외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흔들흔들 걷는다. 후진 뒷길이나 선창, 포구, 갯가를 걸을 땐 혼자도 좋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둘이라면 더 좋다. 앞서거나 뒤 따르면서 허름한 세월의 흔적들을 기웃거려 보는 일도 좋다.
아련함은 애절함의 다른 말이다. 걸레처럼 헤진 속곳을 보여주는 선창이지만 오늘 이 순간에도 간절했던 오늘이 다시 피어나고 있다.
고개를 떨군 어선들과 그들을 결박해 놓은 억센 밧줄과 심난한 표정의 회벽 건물들을 휘휘 둘러본다. 이 강가에서 펄떡펄떡 뛰던 물고기들과 억센 사나이들의 손짓과 아줌마들의 가쁜 숨소리가 익어갔을 것이리라.
소설 ‘탁류’의 <인간기념물>에는 선창의 풍경에 대해 “ 날이 한가한 것과는 딴판으로 선창은 분주하다.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돛대를 옹긋쫑긋 떠받고 물이 안 보이게 선창가로 빡빡이 밀려들었다.”라고 했다. |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끝을 뒤좇아 밟는다. 회색빛으로 늘어선 하구의 안쪽, 생선이나 조개류를 다루어 씻어내는 오막살이 포장마차가 난간에 위태롭다. 어패류들을 다뤄주면서 생계를 이어갔던 어머니들의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칼을 생각한다.
이 포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낡은 함지박과 물통, 몇 가지의 플라스틱 작업용기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일거리가 있건 없건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생선 다루는 작업장의 불문율이다. 그렇잖아도 비린내와 깨끗하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있는 생선인데 그걸 다루는 일을 천직으로 아는 사람들이 허술히 할 리가 없다.
두 어 평 남짓한 작업장 안에 들어서서 생선과 조개류의 살을 바르고 바닷물로 헹구어 내면서 내장과 비늘을 정리해주던 아줌마들의 날렵한 손놀림을 상상한다. 요즘은 몇 상자의 잡어들이 일거리로 남았다.
사립문 열듯 살며시 밖으로 나온다. 문 밖은 하오의 바람이 무리로 일어서고 있다. 쑥 내려간 난간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설프게 난 계단이 뻘밭까지 이어졌다.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려가 밀려든 뻘에 손을 얹어 본다. 시큼한 냄새가 밀려오지만 싫은 정도는 아니다.
굵기가 엄청난 밧줄과 밧줄로 칭칭 동여맨 채 수리를 위해 기다리는 낡은 어선들과 몇 척의 바지선들이 그나마 다정한 표정이다. 힘이 빠진 배들의 그 심심한 안색을 살펴가며 선창에 널린 삶의 흔적들을 건져 올려본다.
채명룡 / 2018.08.13 17:4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