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청이․ 째보, 그리고 선창>
소설 ‘탁류’의 첫 장을 열면 “지도를 펴 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에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
지금은 흔적도 없어졌지만 1900년대 초 지도를 살펴보면 이 선창 부근이 ‘휙’하고 휘어져 들어갔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쑥 들어간 지형을 두고 ‘째보’라고 이름 지었으니, 옛날 사람들 지명하나는 참 기막히게 만들어냈다.
그 길을 오늘에 걷는 건 납작하게 엎드려 사는 사람들의 삶의 뒤 안을 바라보는 일이다. 군산의 중동과 금암동 일대를 지나 둔뱀이로 향했던 일제 강점기, 초봉이의 간절했던 날들을 오늘에 새겨본다.
입술이 째진 이들을 놀리는 말로 ‘언청이’라고 불렀다. 어쩌다 한번쯤 눈에 띄었고, 보여야만 보는 게 다였지만 오늘에 그 사람의 슬픔과 마음 속 갈증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인다.
언청이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를 본 적이 있는가. 아이 입술이 갈라져 나온 게 마치 자신의 업보이자 죄인 양 치마폭에 감싸 안아 키우던 그 시절의 어머니들.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1980년대까지 온갖 걱정과 시름을 감싸 안아 주었던 선창, 긴 세월 잠을 잤던 이 곳이 다시 깨어난다고 한다.
요즘은 이런 장애를 그대로 놔두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예전엔 입술 위쪽이 갈라진 상태로 질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고 또래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악동 아이들에게 엄마는 방패였고, 엄마는 유일한 피난처였으며, 삶을 달리할 때까지 언제나 구세주였다.
발을 돌려 선창 쪽을 보고 섰다. 왼쪽의 건물들은 ‘화려했던 그날들이여’ 하고 폼을 내는 듯했지만 이층 언저리엔 궁색한 기운이 가득하다.
언뜻언뜻 피곤한 모습도 보인다. 오른쪽은 더 절박하다. 예전 1990년대 까지 번창했던 금강수산 냉동 공장이 있던 건물이다. 멀쩡하게 하얀 건물이 그대로이지만 수산업이 멀리 길 떠난 마당에 속앓이가 어제 오늘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째보선창, 그리고 선창가는 길. 그 이름과 기억, 그리고 아련한 추억으로 떠도는 그 포구는 없어지고 물때마다 돌아오는 잿빛 뻘 만이 남아 외롭다.
생선경매를 부르던 왁자지껄한 소리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어부들의 아귀다툼도 이젠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사연 많은 사람들과 시간들은 간 곳 없고 허연 배를 드러낸 포구에 남겨진 폐선 몇이서 아스라한 그 때를 회상하고 있다.
채명룡 / 2018.08.07 18:4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