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흘러내려온 금강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한가롭거나 쨍쨍하게 다투거나 그 안에서 모두 삶의 치열한 이유들이 존재 한다. 갯가의 작은 구멍들도 마찬가지이다. 손톱만한 게들이 그 구멍을 드나들면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과 또 다른 생명들을 퍼 날랐을까.
여기에도 색깔 있는 삶들이 두 눈을 번뜩이고 섰다. 게으른 표정인 몇 마리 새들과 서성이는 사람들 사이로 휭 하니 찬바람이 분다. 바닥을 굴러보지만 철제 바지선의 근육질은 건들면 터질듯 팽팽하다. 먼발치로 구름과 구름이 금강하구에 걸려 있고, 양 팔 곤두세운 몇 마리의 게들 낯선 이들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물이 빠진 흑암 등부표는 말라빠진 표정이다. 뻘을 가로지르는 갯 길의 흔적이 물길을 냈고, 그 물길 따라 시나브로 들 물이 차올랐다.
발목까지 깊숙이 박아두고 사방을 둘러보는 녹슨 바지선 위로 올라갔다. 짠 내가 훅훅 풍기는 한 뼘 기계실 위로 갈매기 몇은 날아다니고, 또 몇은 밑바닥과 닿은 갯벌 곁에서 먹이를 좇고 있다.
나는 오늘, 떠나지 못한 갈매기로 남는다. 그리고 탁류와 함께 남겨진 강기슭을 굽어본다.
낮은 건물마다 햇볕이 내려앉아 있다. 드문드문 살펴보고 헤집어 보면 얼기설기 깁고 짜 맞춘 건물 틈새로 언뜻 언뜻 일본식이 눈에 띈다.
시차를 망각한 페인트칠을 보면서 ‘참 소금기란 게 이렇게 억세구나’하고 깨닫는다. 헌 옷을 겹쳐 입은 모습의 건물과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시간의 흔적들이 슬며시 눈에 들어왔다. 내 삶의 거친 숨소리도 이 바닥에선 숨을 죽여야 했다.
해성식당 옆 천생 안강망 사무장인 정희두씨 사무실도 1970년대 그 때 그대로이다. 화장한 아가씨처럼 가끔씩 페인트칠을 해서인지 겉은 환하지만 그만한 시간의 깊이를 가진 듯 낡고 초라하다. 초라한들 어떠리, 여기선 초라가 대세이니.
언제나 저만치 서 있는 처마와 언덕을 등진 고샅에서는 마른 바람이 작은 회오리로 떠돌고 있었다. 소금기가 배어든 기둥마다 꺾어지고 시든 삶의 흔적들이 애달프다.
안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변하지 않았지만 물이 들고 빠지면서 모두가 제 각각의 모습대로 살아간다. 여우 꼬리만큼 남은 햇살의 무리들이 시멘트 길 위에서 기지개를 켜는 늦은 하오의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오늘은 뒷골목 해성식당에 가서 반지회에 ‘소맥’ 두어 잔 걸치고, 담 벽에 기대 끄덕 끄덕여도 좋을 일이다.
채명룡 / 2018.07.18 08:5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