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魯會燦)의 죽음은 ‘정치인의 마음과 자세가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스타 정치인 노회찬 국회의원은 2018년 7월23일 양심고백의 수단으로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아온 노 의원은 많은 국민들의 애도 속에 영원히 볼 수 없는 세계로 떠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가슴 아프고 비통한 심정”이라며 “삭막한 정치판에 말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진보정치인 노회찬 의원의 비보에 깊이 애도 한다”고 말했다. 유족과 정의당에도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노회찬은 1961년 5.16 군사 쿠테타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적 회오리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신반대데모에 가담하는 등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에 그 동안의 생애를 바쳤다. 서울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조문하지 안했을 뿐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이낙연 국무총리, 수많은 정치인 일반국민들인 조문객들의 눈물과 오열은 국장에 버금가리만큼 국민적 마음을 비통하게 안겨줬다.
정치인 노회찬의 한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국민적 감동을 불러일으킨 대 사건이다. 그는 장애인, 사회적 약자 등 삶의 바닥을 헤매는 현장을 찾아 이들을 위로하며 ‘사람사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안겨줬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길거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시위 군중 속에 들어가 함께하며 ‘국민을 위해서 진실을 위해서’,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진실을 밝히라”고 외쳐댔다. 노회찬은 “정치인은 자기적 정치행위는 언제나 성찰을 해서 잘못이 있으면 부끄럽게 생각하고 국민으로부터 잘못을 용서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자신의 정치행위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변을 토해냈다. 유신반대 데모를 하다가 영어의 몸이 됐을 때는 어머니가 신문스크랩과 “왜 이 길이냐”는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오면 “차마 읽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며 “울먹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대학 4학년 때 철공장 용접공으로 위장 취업하여 노동을 하면서 정명수라는 필명으로 노동 잡지를 발행하여 노동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회사의 조직처럼 노동운동을 조직화하여 정치세력화한 다음 정당으로 발전시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자는 취지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에 투신한 노 의원은 50년 사용한 판을 바꿔야 한다며 진보정치의 대중화에 전력투구했다. 노 의원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 편에서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정치인이 돼야한다”는 소신으로 자기적 가치관과 인생철학으로 점철된 정치인이다. 글 솜씨와 해학, 언어 구사의 유연성은 다른 이의 추종을 불허했다.
대중적 인기는 물론이지만 참 정치인으로 살아왔기에 불법정치자금 수수설에 결국 국민에게 목숨을 바친 것이다. 노회찬의 죽음은 오늘의 정치마당 주인공들에게 생생하고 커다란 교훈을 심어 주었다. 영면 하소서!!(본지 회장)
김철규 / 2018.08.07 17:4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