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경>
- 반듯한 현대식 건물들, 근대소설마을 컨셉과 이질적
- 건물 외벽 고풍스런 타일 보완공사로는 미흡
- 아련한 추억의 길을 위한 벽화사업 등 추가 필요
산언덕을 헐어 토담을 치고, 가난의 모습처럼 속이 텅 빈 블록 몇 장으로 방을 만들고 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살았던 말랭이 마을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단칸 셋방의 아련하고 애달팠던 삶을 추억의 한 장으로 만들어 가려는 군산 신흥동 ‘근대소설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을까.
신흥동 말랭이 마을을 찾은 지난 5일 오후 2시,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왔지만 여전히 군산의 바람은 매서웠다.
근대역사경관지구의 히로쓰 가옥 뒷길로 들어가면 개발논리에 의해 하루가 멀다 하고 허물어져가는 산동네들 속에서 살아남은 작은 마을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흥동 말랭이 마을’이다.
◇ 1970년대 이미지의 근대소설마을(?), ‘글쎄요’
<공사장 위로 거대한 주민센터 건물이 보인다>
1970~80년대 모습을 만들려는 신흥동 근대소설마을. 군산시는 이곳에 근대문학자료관, 남녀노소 추억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문화놀이터, 안내센터, 근대영상‧음악관, 근대생활체험관, 신흥양조장, 추억관, 전원일기, 골목길 단장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성냥갑처럼 각이 졌거나 올망졸망 낮게 고개 숙인 지붕들 사이로 투박한 골목길이 이리저리 나 있다. 골목을 돌아 나가면 곳곳에 핀 선명한 개나리와 색 바랜 집들이 제법 조화롭다.
몇 걸음 더 올라가 보니 시간이 멈춘 집들 사이로 새롭게 단장하는 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당초의 사업 목적이나 주변의 집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수룩하고 어설퍼야 제격인 말랭이의 집들을 헐어내고 ‘주민지원센터’가 예정된 엄청난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산동네 마을의 소박한 느낌이 아닌 낯선 현대식 디자인의 건물 외관을 보면서 ‘애잔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에서 갑자기 ‘각박한’ 현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군산의 문화예술인들은 “어설픈 골목길을 만들어 놓아야 아련했던 향수에 젖어보려는 관광객들이 찾아올 텐데, 이런 현대적인 모습의 건물에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의문이 든다.”고 했다.
◇ ‘아련함’과 동떨어진 리모델링 사업
<옛 모습이 남아있는 음수대>
철거한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리모델링하여 작가들을 입주시켜 문화예술 콘텐츠로 삼으려고 계획했다는 집들을 살펴보니 마찬가지였다.
리모델링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되었으며, 집을 헐고 새로 짓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건들면 무너질 지경으로 중성화된 낡은 건물을 보수하기에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설계라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공을 맡은 도완건설의 이기추 소장은 “설계에는 건물을 보수하라고 되어 있지만 현장에 와보니 상황이 달랐다. 벽체가 손가락으로 파질 정도로 콘크리트 중성화가 심했으며, 건들면 무너질 곳이 대다수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설계 변경이 문제가 아니라 새롭게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감독 공무원과 함께 현장 실정에 맞게 일을 해나갔다.”고 덧붙였다.
골목은 바람소리와 몇몇 주민들의 발걸음만이 아주 가끔 들렸다. 오래 전 타일로 감싼 대문과 그 문간 옆 화장실 등 추억의 모습을 보존해 둔 집과 시간이 쌓여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담장을 지나니 공동 우물처럼 사용되었던 ‘음수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떨어진 타일과 녹슨 수도꼭지는 한눈에 봐도 오래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아련함’아닐까 생각했다.
군산시간여행과 연계한 추억의 관광지로 변신을 시도하는 만큼 정겨운 골목길의 느낌이 살아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고민하고 그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 ‘그 때 그 시절’ 벽화사업 보완 필요
<시간이 멈춘 골목길>
마을 한 켠 새로 지은 건물에서는 외벽을 옛스럽게 바꾸려는 타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과거 지향적인 말랭이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최신 건물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이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은 “건물만 번듯하게 지어 놓는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이 상태로는 신흥동 골목의 옛 모습을 완전히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 옛날 추억의 골목길을 만들기 위한 사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흥동 골목길의 추억을 근대역사경관지구와 연계시키는 관광 자원으로 삼으려고 했다면 그런 아련함과 애절함이 보여 질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 보였다.
옛 사진 자료를 토대로 ‘추억의 벽화’ 사업 등을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대적인 이미지가 더 많아진 이곳에 ‘그 때, 그 시절’ 벽화가 드리워진다면 추억을 찾아가는 골목 이야기가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이곳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주민들과 관광객이 함께 상생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혜진 / 2019.04.09 16: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