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산의 새해(作 허양 객원기자)
우리나라 정치사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아우르는 단어가 386이다. 1990년대 IMF가 왔을 때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사회변혁의 주도층 30대를 이렇게 이름지어 불렀다.
정의롭지 않은 권력에 항거하던 세대라는 의미로 불리면서 새로운 사회질서의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그 이후 세월이 지나 386은 사십대가 되었고, 이제 오십을 넘어 육십대가 되기도 했다.
필자는 586 세대이다. 아니 올해 우리 나이로 60이 되었으니 686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지방대학생이었던 필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이었던 독재에 항거하여 취루가스를 마시면서 돌맹이를 던졌다. 중앙로 시청 사거리와 대명동 역전 앞, 시외버스 터미널 앞 등에서 앞을 가로막는 진압 경찰들과 싸웠다.
군산을 비롯한 전국의 목마른 갈증들이 모여 ‘독재 타도, 민주 쟁취’ 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고 노태우의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세력들은 건재했다. 나를 비롯한 물결들은 절망했다. 다만 죽지는 않았다.
그 시절, 시인을 꿈 꾸었던 필자에게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는 충격이었다. 운동권 가요로 불리면서 피끓는 청춘들에게 가슴 아린 정서적 유대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네 이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렇게 끝나는 시를 엄숙한 표정으로 읽으면서, 혹은 피를 뿜어내듯한 걸걸한 목소리로 변성시켜 그 노래를 부르면서 절망을 삭이기도 했다.
지난 한 해, 전 국민이 힘들었지만 내 고향 군산은 더더구나 어려웠다. 업친데 덮친격이다. 현대중공업, 지엠군산공장 사태를 코로나19에 얹어 이젠 지나간 일로 치부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안될 말이다. 덮어둘 수도 없거니와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군산형 일자리를 통해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명신 컨소시엄을 마냥 믿기만 해서 될 일인가. 시민발전주식회사 등 재생에너지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80년대 민주화의 봄처럼 거대한 물결은 아닐지 몰라도 군산의 경제적 발판을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군산의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특히 신영대 의원은 물론 강임준 시장과 정치권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낸 마당에 말해 뭐하랴만 ‘타는 목마름으로’ 그 험한 세상에 돌멩이를 던지며 맞섰던 그 때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이렇게 절규했던 시와 같이 오늘의 자유와 민주를 이루어 낸 586, 아니 686들이여. 내 고향 군산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타는 목마름으로’ 이 어둠을 터널을 함께 건너가는 데 힘을 모으자.
그리하여 도저히 가망없는 외침으로 ‘거대한 적’을 물리쳤던 그 날의 열정이 이 겨울의 강변에 스며들 수 있게. 686이면 어떻고 786이면 어떠랴. 언 땅 한편 고샅에 앉아 ‘군산놈’이었음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채명룡 / 2021.01.06 15:0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