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사회가 얼마나 작은가 하면, ‘처음 보는 사람도 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수 있다.’라고 비유하는 말로 짐작할 수 있다.
좁은 지역 사회의 폐해는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진영 나누기의 긴 그림자로 나타난다. 선거가 끝나도 서로를 힘주어 바라봤던 그 응어리로 인하여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다.
기껏해야 27만에 못 미치는 소규모 도시에서 판판이 ‘내 편, 네 편’이라니..... 사람 사이가 이리저리 찢기는 건 물어보나 마나이다. 밖에서 볼 땐 어쩌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아옹다옹하는 걸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군산에 들어오려면 임피나 대야를 거쳐야 한다. 돌아나갈 수는 있지만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없다.
금강을 다리로 연결했다지만 서로 ‘장항×’, ’군산ב 이라고 불러댈 정도로 냉소적이고 배타적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사이지만 정서는 판(?)이 다르다. 말하자면 돌아갈 길 없는 상당히 폐쇄적인 공동체이다.
바깥사람들이 군산을 부를 때 ‘짠물’이라는 말도 썼다. 거친 항도의 이미지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사람들의 교류는 매우 친교적이다. 한 우물처럼 작아서인지 모르지만 처음 볼지라도 ‘언젠가.... 혹은 어디선가.... 한번 쯤 보았지 않느냐’라고 인사를 건넬 정도로 친근감을 표시하여 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군산사람들끼리는 작은 여지를 주는 식으로 독특하게 발달하여 왔다. 이런 걸 두고 ‘군산정신’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보니 ‘누구네 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라는 둥’, ‘누가 누구네 집의 누구라는 둥’의 말이 쉽게 퍼졌으며, 그게 독특한 군산식 여론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래서 진영을 나누기가 무척 어렵고, 편을 나누지 않는 것 보다 훨씬 불편한 앞날이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를 위해 대리만족을 하고, 나를 대신하여 줄 정당을 지지한다는 게 결국 진영나누기 꼴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선거는 끝나기 마련이고 승자와 패자는 엄연히 갈린다. 그 이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물 안 개구리였을망정 우린 식구였다. 서로 바라보면서 묵언의 대화, 혹은 심정적 지지로 ‘짠물’에 대하여 동류의식을 나누었던 사이였다.
‘너 잘났다, 너 못났다’ 아옹다옹하던 앙금이야 남았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자. 잔인한 4월이 다 가기 전에 말이다.
우린 다 알잖은가.
채명룡 / 2020.04.14 17:5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