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늘부터 그를 의지의 승부사로 불러야 할 것 같다.
참담한 패배를 맛보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면서 재기하여 왔던 7전8기의 정치인 신영대. 그를 말하려 한다.
그를 만난 첫 인상은 선비였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386세대의 중심에 섰던 소신파이자 강골이다. 전북대 총학생회장 시절 민주와 자유를 외치다가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고, 경기도 교육감의 싱크 탱크, 이른바 문재인 대통령의 ‘가신 3철’로 불리는 전해철 의원을 가까이에서 돕는 등 중앙 정치권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약관의 나이에 정치를 시작하면서 어느 땐 ‘어리다’는 이유로, 또 어느 땐 ‘권모술수’에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순수했고 원칙을 지키려 했다.
현실 정치의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 그의 가슴은 뜨거운 용광로가 되었다가 차갑게 식혀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의 정치 행로는 짓밟히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오뚝이’를 닮았다.
강현욱씨가 민주당 위원장을 맡았던 지난 2002년 5월 지방선거에서 신영대는 강단 있게 경선 포기를 결정하면서 첫 번째 좌절을 맛봤다.
이어 2008년 1월 ‘신군산 신일꾼’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선에 도전했지만 강봉균 후보에게 밀렸다.
딱 한번,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했으나 1만6,839표를 얻고 상처뿐인 2등에 그쳤다. 경선 후보 2배수 압축과정에서 3선 강봉균 의원과 함께 탈락한 그의 재심 신청을 민주통합당이 기각하자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했던 결과였다.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 받는 17% 득표를 한 데 대해 주변에선 ‘대단하다’고 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표에 목말랐으며, 배가 고팠다.
당시 정치 초년생인 김관영 후보가 6만342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김관영, 신영대, 함운경, 그리고 정의당의 조준호 후보까지 모두 제일고 동문이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을 개혁하라고 영입한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 체제가 선거가 코앞인 3월 18일 김윤태씨를 전략 공천했다. 전국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바람이 거세게 불었음에도 현역인 김관영 의원의 당선을 막아내지 못했다.
당시 신영대는 중앙당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비윤리적, 비민주적, 비이성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좌절의 연속이었던 정치 행로에서 그는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정치적 항변을 누구는 ‘무소신’ 혹은 ‘기회주의’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진심과 원칙을 말했다. 그가 군산지역위원장으로 입지하고, 다시 한 번 꿈의 무대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든 힘이 아닐까.
오늘 그는 정치 무상의 첩첩한 질곡을 벗어나 현실 정치인으로 돌아왔다. 시련은 신념을 단련시킨다. 그 동안의 고통과 회한과 눈물이 위기의 군산을 돕는데 쓰여질 것이다. 군산 정치의 자산으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채명룡 / 2019.07.16 18: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