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로 기억이 되는데 군산경찰서 A서장에게 연락이 왔다.
필자하고 주말에 골프라운드를 한 번 하자는 전화였다.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제일 높으신 분인데다 나이 차이도 10살 이상 나 조금 껄끄럽기는 했어도 정읍에 있는 T골프장으로 오라고 해서 갔다.
골프장에는 A서장, 언론계 P선배, 사업을 하는 B사장이 와 있었다.
알고 보니 A서장과 P선배는 막역지우(莫逆之友)로 자주 동반 라운드를 하는 사이였는데, 필자가 이날 라운드를 같이하게 된 것이다.
처음 라운드를 하고 현직 경찰서장이라 내기를 안 할 수도 있지만 혹시 몰라서 10만원권 수표 몇 장에 현금을 넉넉히 가지고 갔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더 크게 한 타에 1만원 내기를 P선배가 제의하여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되었다.
각자 구력도 그만그만하니 스크래치 플레이(scratch play : 핸디캡handicap을 적용하지 않고 하는 플레이)를 하자고 했다.
P선배는 골프 클럽을 아예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놓고 다니는 선배였다. 골프를 배운 뒤 연습장에는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다고 한다. 라운드 중에도 연습스윙 없이 바로 클럽을 휘둘렀다. 골프 시작한지 30년이 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샷 전에 연습스윙 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까지 그 선배 외에 보지 못했다. 잠깐 샛길로 빠지자.
고 이병철 삼성회장, 고 정주영 현대회장도 골프를 좋아했지만 필드에서는 연습스윙을 전혀 하지 않는 골퍼였다고 한다.
앞 팀에 현대건설 중역들이 골프를 치고 있었는데 정 회장이 연습스윙 없이 빠른 속도로 플레이를 하다 보니 앞 팀에 바짝 붙게 되었는데, 앞 팀 중역들이 정 회장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서 카트에 골프가방을 그대로 두고 다들 도망을 가버렸다고 한다. 캐디와 골프클럽은 있는데 사람이 없어 의아하게 생각한 정회장이 캐디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는 “망할 놈들, 인사하고 치면 되지 왜 도망을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삼성 이 회장은 ‘골프는 인격’이라고 매너를 굉장히 중요시 했는데, ‘남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폐를 끼치는 것’이라며 항상 바로 샷을 날렸다고 한다.
(샛길에서 다시 돌아와서) P선배가 전반 몇 홀 동안 100만원을 잃었다고 서서히 열을 받기 시작하면서 따블에 따따블을 계속 불러 결국 후반에 들어가 내기에 강한 P선배에게 초반에 딴 돈을 도로 반납하게 되고 라운드는 끝이 났다.
그날 동반자 모두 70대 스코어를 내고, 필자는 돈은 별로 따지는 못했어도 A서장보다 조금 잘 쳤다.
A서장은 도내 명문고 출신으로 잘나가는 동문들이 참가하는 동문골프대회 우승자 챔피언임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나이도 어린 필자한테 진 것이 나름 속으로 분했던지 조만간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헤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부킹이 됐는지 다음 주에 그 T골프장에서 만났다.
멤버는 이하동문. 필자는 그날 A서장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2주일 쯤 지나자 또 연락이 왔다. 다시 T골프장에서 격돌했다. 필자가 이 날도 졌다. 결국에 A서장은 삼판양승을 한 뒤에야 얼굴이 펴지고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맛있게 한 뒤에 헤어졌다. 그 날 뒤로 A서장과 필드를 같이 나갈 기회는 없었지만 아마 그 분은 골프 깨나 친다는 소문이 들려온 다른 골퍼를 찾아 끝장대결을 계속 벌였을 것이라 추정되기는 했다.
A서장은 퇴직 후 생활체육 전북골프연합회 초대회장을 맡는 등 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 후에나 골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 허종진 기자
허종진 / 2018.08.27 18:2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