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있는 자는 어리석은 자를 책망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출세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남보다 더 높은 자리,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 떨어질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정상에서 굴러 떨어지는 이유가 꼭 남 때문에 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노리는 악인이란 실은 자기 자신일수도 있다. 무리한다든가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든가 의리를 모르는 행동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듭하다보면 그것이 화근이 되어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마음에 남을 저버리지 아니하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다.’ 하였던가. 한마디로 정상에 오른 사람이 자신을 망치는 것은 겸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만을 최고라고 믿는 오만방자에서 실수가 생기고, 그 실수가 파멸을 부른다.
그래서 존중경에서 “겸양과 하심(下心)이 지혜를 이루는 방편이다.”라고 가르친다. “공경하지 않는 자는 큰 고통이 따른다. 예의가 없고 남의 뜻을 두려워할 줄 모르면 도리에서 멀어진다. 공경할 것이 있어 예의가 있고 순종하면 의롭고 안락하게 지낼 수가 있다. 이 세상사람 중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그를 존중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라.”
존경심이 없고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아만심(我慢心)이라 한다. 야망과 야심을 가지고 천하를 그려보지만 아만심이 있는 한 현실을 바라보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없다.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이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법화경에서 상불경보살은 이러한 어리석음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남을 가볍게 보지 않고 존중하고 예배했다.” 그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공경하는 것은 잘 났건 못 났건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 될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상불경보살의 겸손이다. 그의 “겸손”을 통해 ‘최고의 지혜를 얻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모두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겸손하다는 것은 삼가하고 두려워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늘 살얼음을 밟듯 조심하는 사람은 여간해서 큰 실수를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아가며 사는 사람이 파멸하는 경우는 없다. 만약 파멸을 한다면 잠시라도 마음을 느슨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엉뚱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 점을 안다면 언제 범할지 모르는 작은 실수에 대비해 남 몰래 사소한 마음 챙김이나 착한일이라도 쌓아가야 한다.
남이 하기 싫은 작은 일을 자신이 먼저 하게 되면 그것이 공덕이 된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진다는 사실이다.
사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마음가짐을 배우고 그 마음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한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새 그것을 잊고 남에게 겸손 보다는 오만하고 악한 일을 서슴없이 하는 수가 많다.
그러다가 일이 결정적으로 잘못되면 그동안의 감사하는 마음과 체면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세상 탓, 친구 탓, 이웃 탓, 온갖 남의 탓으로 전가하려한다.
높은 산을 오르려는 사람은 정복하겠다는 오만보다는 겸손한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 최고라는 우월감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곧 천길 벼랑으로 나락하는 순간이다.
정상에 오르려거나 정상을 지키려는 사람은 먼저 겸손하기를 배웠으면 좋겠다.
성흥사 시민선방 회주 송월 스님
송월 스님 / 2021.11.23 16:4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