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은 ‘식사 때마다 읊고 공양을 시작한다.’
“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가?”“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참 부끄럽네.”“마음의 온갖 욕심을 다 내려놓고” “몸을 지탱하는 양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겠습니다.”
‘사흘 굶어 담 안 넘을 장사 없다.’ 천하 없는 장사라도 배한테는 못 배겨난다. 설움설움 해도 배고픈 설움보다 더 큰 서러움은 없다고 한다.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에게는 옛날 동화 속에 서나 나오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언제인가 있었던 일이다. 북한 청년 한 명이 남쪽으로 넘어왔다. 캄캄한 야밤중에 물길 30리를 헤엄쳐서, 그의 탈출기는 마치 옛날 영화 빠삐옹을 연상케 했다.
탈출에 성공한 그 최초의 일성(一聲)이 바로 이 소리였다. ‘배고파서 왔소.’ 참으로 기가 막히는 소리이다. 이는 차라리 처절한 절규다. 그의 절규는 우리로 하여금 가슴을 몹시 아프게 한다.
배고픈 사람은 북한에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 뉴스에 나온다. 우리 주변에 끼니를 굶는 어린이들이 수두룩하다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도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됐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다는 건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더구나 오늘과 같이 먹을 것이 넘쳐 나 개들도 남기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그러나 한 편엔 이런 일도 있다. 배부르고 돈이 남아도는 사람들, 외국 나들이가 뻔질나단다. 나아가서는 보호동물이라도 몸에 좋다면 밀도살해 먹었단다. 그러다가 덜컥 하기도 했단다.
먹을 게 없어서 그런 짓을 한 게 아니다. 배가 고파서도 아니다. 피부, 정력, 보신을 위해서다. 돈 자랑 관광이었다. 좌우지간 그 분야에서는 그 어느 나라 사람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따라올 수가 없을 정도로 기발하다고 한다.
코로라19로 인하여 그들은 외국 나들이도 못하여 안달하여 온 몸이 얼마나 쑤셨을까. 이러한 문제들은 나라 밖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안에도 있다.
같은 물건도 비쌀수록 잘 팔린다. 국산품만 못해도 외제라야 중고품이라도 폼이 나고 얼굴이 선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땅에 배기량이 높은 자가용은 왜 이리도 많은지. 만약 없는 살림에 값 비싼 차를 살짝 스치기만 하더라도 살림은 거덜 날 것이다. 주차 싸움에 가난한 사람은 목숨을 잃은 사람도 생겼다던가.
그것도 이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일 것이다. 음식점에도 가보자.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보다 버려지는 게 더 많다. 옷도 이제는 사치품 화 돼 버렸다.
가구와 전자제품도 몇 년 쓰면 그만이다. 길어봤자 잠깐이다. 못 쓰게 돼서가 아니다. 멀쩡한데도 새것으로 바꿔야만 성이 찬다. 묘한 이치다. 희한한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어떤 사람은 검소해서 침대 하나를 3대째 쓰고 있다 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것도 나무침대, 발목이 부러져 수리해서 쓰고 있더란다. 이 소리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러면 그렇지, 남의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아낄 줄을 알아야 한다. 동전 한 푼이라도 아낄 줄을 알아야 하고, 물 한 방울 쌀 한 톨이라도 귀한 줄을 알아야 한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의 등 뒤에는 배곯는 사람이 있다. 굶어죽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실도 알아야 한다. 요즘 사람들 갈수록 영화 ‘오징어게임’을 닮아가나 보다.
성흥사 시민선방 회주 송월 싄ㅁ
송월 스님 / 2021.11.17 10: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