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어려운 나라 그들과 나눔을 위해서 해외 출입을 하던 그 때의 일이다. 무엇보다 언어의 장애가 고충이다. 교포들을 상대로 할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현지인들을 상대로 할 때는 통역을 동원하여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느낀 바를 우리말로 나 자신이 말 할 때에도 느낀 그대로 다 표현하지 못 할 때가 많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입으로, 그것도 다른 나라 말로 옮김에 있어서 어찌 정확히 전달되겠는가.
말이란 미묘한 것이라 역시 말 밖(外)에 또 말이 있었다. 더듬거리는통역을 통해서나마 진실은 전해졌다고 나는 생각을 한다.
손짓과 몸짓, 미소, 고요한 침묵, 그리고 서로 한마음이 되어 이 지극한 한마음으로 향하는 마음들....그것으로써 이심전심(以心傳心) -모든 사람들은 기쁜 가운데, 그렇다.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습관, 환경이 다르다 보면 분명 사람 사이에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참 뜻을 추구하는 정열, 영원한 세계를 향하는 애정이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런 것의 차이는 그다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 아닌 언어, 또 하나의 신비한 언어가 되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고, 말없는 가운데 깊이깊이 이해되는 것으로써 오히려 진실의 참 뜻을 전 할 수 있는 진언(眞言)이다.
그런 마음은 마치 한 송이의 온 세상 가득한 아름다운 하얀 눈 꽃과도 같다. 꽃의 아름다움에는 국경이 없다. 꽃의 향기에는 언어의 한계 따위가 없다.
아프리카든 아메리카든 유럽이나 동남아시아든 한 송이 꽃은 그대로 인간의 마음에 꼭 같은 기쁨을 준다. 행복의 본질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송이의 ‘꽃의 언어’ 한 송이 꽃의 진실을 필요로 한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아름다움, 누구에게나 순수한 기쁨을 주는 향기를 우리는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세간의 지식으로써는 얻을 수가 없다. 세간의 지식으로 얻는 것은 예컨대 한국이나 외국이나 같은 것이다. 그것은 이쪽에서는 통하지만 저쪽에서는 막히는 것으로써 유한하고 좁은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등불 삼고 너 자신을 등불 삼으라.” 진리는 국경이 없다. 국경뿐이랴. 그것은 인간계뿐만 아니라 신들의 세계, 영들의 세계, 미물들의 세계까지도 하나인 크나 큰 몸이다. 그것은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어디에서나 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향기는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는 아직 자신을 향해 안으로 안으로 좀 더 깊은 마음을 찾아 자신과의 깊은 대화가 있어야 한다.
그 당체인 자신의 참 모습인 주인공이야 말로 나 자신과 이 세계를 모두 건지고 기르는 거대한 아름다운 화단(花壇)이기에 말이다.
송월 스님 / 2020.12.03 14:3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