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경찰관의 말은 두 사람에게 들릴 리가 만무했다. 지구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두 사람은 뒤엉켜 싸우면서 의자를 넘어뜨리기도 했고 책상 위로 넘어지면서 모니터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몇 명의 경찰관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놓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둘은 서로에게 욕설을 던지며 싸우려 들었다. 지후는 이 모든 상황이 싫었고 두려웠다. 어쩌다 이 상황에 자신이 있게 되었는지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나서야 그들의 난동은 끝이 났다.
사건 조사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시작되었다. 찌질남이 신고한 지후의 폭행 건은 성만씨가 찌질남에게 당한 폭행을 퉁 치는 것으로 합의했다. 춘천댁 아주머니가 신고한 김성만씨에 대한 지후의 폭행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성만씨가 자신의 실수로 넘어져 벌어진 일이라고 사실대로 진술한 것이 받아들여졌다. 춘천댁 아주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성만씨와 지후가 지구대를 나와 집으로 향한 것이. 지후는 앞 서 걸었고 성만씨는 뒤쳐져 걸었다. 그가 뒤따라오는 게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왠지 다른 날과는 다른 감정으로 그에게 신경이 쓰였다. 달동네가 시작되는 계단을 오를 때쯤 그가 걸어오고 있는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아, 저 사람, 다리를 저는구나. 그래, 그랬었지.'
지후는 그제야 성만씨가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지후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왜 그랬어요?”
불편한 다리로 지후 걸음을 쫓아오느라 숨이 찬 성만씨에게 지후가 물었다.
“뭘?”
“......”
지후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발걸음을 떼었다.
“지후야.”
등 뒤에서 성만씨가 불렀다. 지후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돈 좀 줘라.”
지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비는 어떻게 했어요?”
“모르는디? 춘천댁 아줌마가 냈나?”
“내일 춘천댁 아줌마한테 물어봐서 알려줘요. 병원비 줄 테니까.”
“야야, 쓰잘데기 없는 소리 집어치고 그냥 나 돈 좀 줘라 응?”
지후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몸을 훽 돌려 다시 걸음을 떼었다.
“야, 지후야, 지후야. 우리 딸내미 강지후!”
성만씨는 새벽 시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지후를 연거푸 불렀다. 그의 고함과도 같은 목소리는 새벽의 어둠에 잡혀 먹힌 달동네를 울렸다. 지후는 못 들은 척 그저 발걸음을 더 빠르게 옮길 뿐이었다. 숨이 찼다.
다음 날, 지후는 술집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끝)
이현웅 / 2020.12.31 10: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