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基督)은 크리스토스(고대 그리스어: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가 영어로는 크라이스트(Christ), 이것이 중국어로 번역되면서 기리사독이 되었는데, 중국어로는 지리스뚜(ji li su du) 라고 발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리사독에서 첫 글자와 끝 자를 따서 기독(基督)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기독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옳은 표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보다는 그리스도교 또는 예수교가 옳은 것이다.
우리는 보통 그리스도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예수’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각설하고, 요즘 한국기독교는 가장 수치스러운 또 다른 이름 개독으로 불리고 있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국기독교는 영원히 개독이 될지도 모른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키워가는 무슨 협회가 아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죄인이었음을 깨닫는 사람들이 모여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예수의 제자가 된 삶을 실천하기 위한 훈련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예수의 사람으로 훈련을 받으면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가서 그 세상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 살아가는 내용이어야 한다. 훈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수시로 보수교육이나 연수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과 지식을 유지 발전해야 하는 것처럼 기독교인은 주일에 예배를 통해서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답게 한 주를 살았는지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은 설교를 통해서 채우고, 또다시 세상에 나가서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교회는 이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마치 군대 훈련소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에서 장정을 불러 훈련소에 입소시키는 것은 훌륭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훈련소장이 훈련은 안 시키고 자신의 수하에 있는 장정들의 숫자와 규모만 자랑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하물며 총기 살 돈을 가져와라, 군복 살 돈을 가져와라, 밥값을 내라고 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교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며 살던 사람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그들이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삶, 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으로 살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하는 곳이며, 목사는 바로 이 훈련소의 교관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들만을 위한 협회가 되었고, 목사는 제 본분을 망각하고 돈을 바라보는 자영업자로 변했다.
열심히 전도해서 성도 숫자 늘리고, 화려한 예배당을 자랑하고,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것과 예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예수 정신은 십자가 정신이고, 십자가 정신은 희생정신이고, 그 결론은 이웃 사랑이다.
세상으로 나가서 이웃을 돌보지 않는 기독교는 개독교며, 이것을 가르치지 않는 목사는 먹사일 뿐이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남대진 / 2020.10.12 09:2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