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엌에 드나들면 어머니들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부엌에 드나들면 고추 떨어진다.”
이제 부엌이라는 단어도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에 살지만, 아무튼 남자들이 부엌이나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결혼 후 십 년쯤 살던 남편이 어느 날 늦게 들어오는 아내를 위해서 설거지를 말끔하게 해 놓았을 때, 아내의 감동은 말로 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그 후로 남편은 가끔 아내를 위해서 설거지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투덜거리며 남편이 마쳐놓은 설거지 그릇을 다시 닦으며 투덜거린다.
‘이왕에 하는 것 좀 더 깨끗이 해서 내가 다시 손대는 일 없이 해 놓으면 좋으련만…’
애써 못 들은 척하지만, 남편은 그날부터 설거지할 생각이 사라지게 되고 아내가 늦게 들어와도 설거지통에 그릇은 가득하게 쌓여있다.
급기야 아내는 왜 설거지도 안 해 놓느냐, 고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다 만들어 놓은 음식도 차려 먹지 못하던 남편이 어느 날 결혼 후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상을 차렸다. 아내가 감동한다. 그 후로 남편은 가끔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게 되었고 그 횟수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이제 아내는 저녁 시간이 되어도 귀가를 서둘지 않는다. 당연히 남편이 저녁상을 차려 놓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하루는 아내가 늦게 들어왔는데 남편은 음식도 만들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엇인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내가 짜증을 내며 투덜거린다. 저녁상도 준비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기대하지 않고, 포기했던 일에 대하여 어느 날 도움을 받을 때 사람은 감동한다. 남편이 처음으로 설거지를 했을 때, 처음으로 남편이 음식을 준비했을 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일이 반복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왜 안 하느냐, 고 따지고 처음 느꼈던 감동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처음 느꼈던 감동의 시간은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 곧 익숙해지고, 그러려니 생각하게 되고, 감사는 사라지고, 결국에는 불평하고 비난하며 다투게 되고, 이제는 그 일은 당연히 「네가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배우자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은 살면서 사라지게 되고, 감동으로 시작했던 직장의 일은 스트레스가 되고, 사명감으로 시작했던 일은 업적이 되고, 겸손으로 시작했던 일은 권력이 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처음 느꼈던 감동의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남대진 / 2020.05.28 15:2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