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많이 쓰는 단어가 ‘소명’과 ‘사명’이라는 것이다.
소명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다.
사명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죄 사함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은 오셨다. 그날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 절기는 예수의 생일이 아니다. 훗날 사람들이 정한 절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날짜가 아니라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성탄의 이유나 목적을 한마디로 하면,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기 위함니다. 그 일, 즉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희생케 하고 우리를 구원하시어 맡기신 일은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는 성탄절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탄절에 되새겨야 할 의미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이웃이 되는 것이고, 불의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없는 성탄절은, 기독교인에게도 본질을 잃고 그저 즐기는 날일 뿐이다.
교회에는 시대적 사명이 있다.
기독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의 시대적 사명은, 헐벗은 백성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제사업을 하고, 선교사들은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를 구하고 독립시키고, 일제와 항거하여 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피 흘린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은 신사참배를 총회에서 결의하고, 교회 적으로 우상 숭배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독재 정권을 만들어 내는 일에 앞장섰고, 그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그들의 후예가 지금은 무당과 손잡고 무당 정권을 만들고, 그들에 굴복하고 섬기며 떠받들고 있다.
현재의 교회 적 사명은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제 복 타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쭙잖은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월의식과 오만방자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탄절에 예수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셨다면,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셨을까?
거대하고 웅장한 예배당의 성탄 축하예배의 자리마다, 대형교회 순으로 순회하고 계셨을까? 아니면 이 엄동설한에, 오만가지 비난과 저주와 욕설을 온몸으로 받으며, 죽은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죽지 못해 사는 저들과 함께 하셨을까?
성탄절에 예수님은 과연 어디에 계셨을까? 대형교회당에 계셨을까, 성당에, 아니면 이태원에 계셨을까!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남대진 / 2022.12.26 14:0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