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할 때쯤이면 동네 가까운 논 주인이 일부러 빈 논에 물을 가두어서 얼음지치기를 하도록 배려 해주었다. 그때는 남쪽지방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리도 춥고 눈도 많이 왔었는지.
한겨울 내내 얼음이 얼어 있어서 동네 모든 사람들은 얼음판으로 모여들어 그곳이 마을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스케이트는 구경 할 수도 없었고 일인용 썰매를 만들어 탔다.
송곳은 양손으로 잡고 균형과 가속을 내기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썰매 밑에는 대부분 굵은 철사로 해서 얼음과 마찰을 해서 스피드를 낸다. 간혹 최고의 부러움 대상이 되곤 하는 썰매는 밑에 낡은 식칼을 양쪽에 뒤집어 박으면 최고의 스케이트 썰매가 된다. 바닥에 칼날이 매끄럽고 속도도 엄청 빨라 마치 우리 눈에는 고급 스포츠카 로 보였다.
아침 일찍부터 종일 타다보면 얼음판에 수도 없이 넘어지기 마련이다. 경주시합을 할 때면 회전 부분에서 거의 균형을 못 잡고 넘어지는 게 일쑤였다.
<썰매타기>
지금처럼 방수가 되는 스키바지는 꿈도 못 꿀 때라 해가 지고 집에 갈 때면 엉덩이가 엄청 젖어 엄마한테 혼날 것이 무서워 모닥불에 젖은 옷을 빨리 말리려고 불 가까이에 엉덩이를 들이 대다가 불꽃이 바지를 태워 옷에 구멍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집 앞 대문에서 겁이 나서 못 들어가고 서성이고 있으면 아버지께서 지게에 짐을 가득 지고 오시면서 “ 우리 희야 와 안 들어가고 거기 서 있노?~..” 하면 나는 “아부지~~.. 바지가 젖어서...” 하고 울먹이면 아버지께서는 “ 괜찮다 들어가자 ”하시면서 앞장서신다.
아버지의 지게 뒤를 졸졸 따라 마당으로 들어가면 엄마께서는 나를 보지 못하시고 “희야는 와 아직 안오까요?~~배가 마이 고플 낀데~...” 하신다. 난 더 이상 숨을 수가 없어서 겁에 질린 얼굴로 “엄마 !!~~” 하고 친한 척 부르면 엄마는 내 꼴을 보고는 “ 이노무 짜슥!!!!!!~~~~ 아침에 옷 새로 입혀 놨는데에~~~.. ”“또 옷 젖어서 오네!!!!...”하고 빗자루로 내 엉덩이를 불이 나게 때렸다.
난 맞다가 얼른 엄마를 뿌리 치고 대문 밖으로 도망 나가 버렸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맨 뒷집 이었고 날이 어둑어둑 해지면 옛날부터 호랑이와 늑대들이 자주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무서워서 산 쪽으로는 도망가지 못했다.
젖은 바지에 체온은 자꾸 떨어지고 오들오들 떨면서 멀리도 못가고 대문에서 어슬렁 거리면서 혹시 엄마가 날 데리러 나올까봐 집안을 기웃 기웃 거렸다. 종일 썰매 타면서 힘을 다 소진 되었고 배는 고파오는데 엄마가 날 데리러 빨리 안나오면 오히려 내가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엄마는 밥상을 다 차려서 방에 들여 놓으시고 고무신 한 짝을 벗은 채 도망나간 막내아들을 찾으러 한손엔 고무신 한 짝을 들고서 찾으러 나오시면 그 기척을 듣고 난 마치 대문 앞에는 안 왔던 척 얼른 뒷산으로 허겁지급 도망을 가서 숨어 있었다.
엄마는 늘 내가 잘 숨는 골짜기 계곡 안을 들여 다 보시며 “우리 희야 어디 있노..?”하면서 이쪽저쪽 찾으시는 시늉을 하신다.
밥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래도 일찍 나타나기엔 자존심이 허락이 안되어 엄마를 한참 숨죽여 지켜보다가 결국 엄마는 내가 숨어 있는 줄 알고도 “우리 희야가 여기에는 없구나..”하고 내려 가시는 척을 하면.. 그제서야 난 얼른 “나.. 여기 있다 아이가!!!!~~..”하고 오히려 더 큰소리로 나타나면 엄마는 “우리 희야 여기있었네..어디 있다 이제 나타났노?~ ” 하면서 내 손을 잡고 “배 많이 고프제~ 담부턴 옷 버리면 안된데이~~~..” 하면서 나를 따뜻하게 데려가 주신다. 엄마와 손잡고 집으로 들어서면 아버지께서 ” 희야 어디 갔더노?.. 얼른 밥묵어라..“ 하며 나를 반겨주셨다..
그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고 수도시설도 없었기에 한겨울에도 흐르는 시냇물에 맨손으로 그 많은 식구들의 옷을 일일이 손빨래로 하셨고 또한 옷이 많지 않은 관계로 한번 입으면 적어도 2주정도 입어야 되는 시기였다. 하루 이틀 만에 빨래꺼리를 만들어 낸다는 건 엄마한텐 큰 숙제였습니다.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버린 우리엄마는 평생 화장품을 발라 보지도 못하시고 어려운 시대에 자식들을 위해 아낌없이 다 내어 주셨다. 갈라진 손마디를 보면 가슴이 짠해 집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끝)
이권희 / 2019.07.10 18: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