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
제2화. 아버지와 풍물놀이(2)
나는 부끄럼없이 너무나 기쁜 마음에 “예!”하고 대답을 했고. 풍물패 주 멤버 분들에게 뭐라 말씀을 하셨던지 나를 준비하게 하신 뒤 ‘네가 상쇠 역할이라 먼저 치고 시작하라’ 하셨다.
난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치고 들어갔고 나머지 분들이 합세를 해오며 신기하게도 악기소리 전체가 어우러지면서 리듬이 착착 들어맞는 걸 느끼며 머리카락이 쫑긋하게 서고 몸 전체가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 순간이 나의 최초 앙상블 경험 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고 즐겁다.
통상 운동신경은 달리기로 평가하고 음악의 감각은 리듬감으로 확인을 한다. 그래서 그날 이후론 난 타악기에 흠뻑 빠져서 틈만 나면 두들기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따라 장날 시내에 갈 일이 생기게 되었다. 약장수가 약을 팔러 온 모양인지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고 있었고 멀리서부터 시끌시끌 했다.
장사치가 원숭이를 데리고 생전 첨보는 여러개의 북으로 만든 악기를 쳐 가면서 쇼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물놀이에서 듣던 소리와는 전혀 다른 악기..
원숭이의 재롱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고 장사치의 손과 북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가고 엄마는 장을 봐야 해서 나를 재촉했지만 내 발은 떨어지질 않았고 결국 엄마는 내게 절대 다른 데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스무번쯤 받은 후 에야 장을 보러 가셨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얘기를 가끔 하곤 하신다. 몇 시간을 장을 보고 오셨는데 그 때까지도 있던 그 자리, 북 옆에서 조금도 안 움직이고 눈도 못 떼고 있더라고...
물론 어머니는 주변에 아는 분께 나를 부탁하고 가셨었고 그 사람도 저런 애가 다 있다고 혀를 내 두르셨다고 한다. 나중에야 그것이 드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에서 돌아오고 며칠을 드럼이 생각나서 친구들과 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결국.. 그것을 재현해서 만들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나무 각목을 뼈대로 세운 뒤 합판을 둥글게 잘라 드럼 형태를 만들고 마지막에 심벌이 문제 였다. 그래서 주위의 냄비 뚜껑을 주어다 걸어서 의자에 걸터앉으니 제법 드럼의 형상이 나왔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께서 불쑥 나타 나셨다. 난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풍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라도 드럼은 모르기 때문에 쓸데없는 걸 만든다고 야단맞을 각오로 바짝 긴장 하고 있는데...
예상외로 아버지께서는 뭐하는지 물으시더니 꾸지람은커녕, 기특했는지 아님 당신께서도 좋아하는 것 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림으로 그려 보라시며 못질도 제대로 해주셨다.
이튿날 일어나 보니 찌그러진 냄비 뚜껑은 없어지고 멀쩡한 큰솥뚜껑이 걸려 있었다. 난 엄청 기분이 좋았고 아버지와 나는 같은 취향인 걸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지금 까지 뮤지션으로 아티스트로 긴 세월 해 올 수 있었던건 아버지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이라 생각이 든다.
물질적으론 풍요롭지 못했을지 몰라도 아버지의 그늘에 있을 땐 단 한번도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게 해주셨던 아버지..나의 아버지께서는 92세의 일기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지금 이순간에도 하늘에서 현란하게 북을 치시고 노래를 부르며 친구들과 풍류를 즐기고 계시진 않은지...
아버지 그립습니다... (2화 끝)
이권희 / 2019.05.08 10:4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