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12:24
더하여 흥왕한 사건이 에스겔 37장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마른 뼈들이 우글거리는 골짜기로 안내한다. 묻는다.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말도 안 되는 질문이다. 마른 뼈 골짜기는 에스겔이 살던 당시 조국의 현실이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파괴되고 포로 신세가 되어 1,600킬로 떨어진 이국땅에 잡혀 있다. 무슨 희망이 있겠나?
뼈도 말라비틀어진 마른 뼈처럼 아무 희망의 빛이 없다. 절대 절망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날 수 있나?
에스겔의 대답이 기막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니나이다.” 요령 있는 대답처럼 보인다. 하나님께 물으시는데, "살아날 수 없어요"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살아날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피해 가는 답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대답은 회피성의 대답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다.
대화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실 때는 “사람아”, 에스겔이 하나님을 부를 때는 “주 여호와여”이다. "사람아!" “너는 사람일 따름이다." 새 번역은 더 없는 인생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렇게 부르실 때 깊은 뜻이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너의 눈에 이 뼈들이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느냐?“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너의 눈에 이 뼈들이 살 것 같으냐?“ ”언젠가 마른 뼈처럼 될 덧없는 인생을 사는 너희 눈에 이 뼈들이 살 것 같으냐?“
에스겔 눈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에스겔은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 전능하신 분이다. 못 하실 없이 없는 분이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자다. "예, 뼈들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에스겔은 덧없는 인생이 감히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짐작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결정할 일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뼈들이 살아날 것이고 원하지 않으시면 그 뼈들은 먼지로 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에스겔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의 내용은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에스겔은 하나님 명령대로 대언 한다. 뼈들이 움직인다. 뼈들끼리 서로 맞춘다. 짝 맞추느라 얼마나 신났을까?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였다. 말씀을 더 하면 흥왕한다.
예수 믿기 전 영적으로 마른 뼈다. 열심히 살았는데 허전하다. 남은 것이 없다. 뭘 위해 달렸나? 예수 믿고 말씀이 더하면 흥왕한다. 살맛 난다. 예수 살림의 꽃을 피운다. 이하 생략.(끝)
김민재 / 2021.05.20 12:5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