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 11:13-16
나그네 짐은 간단하고 가벼워야 좋다. 친한 목사님과 함께 유럽 성지 순례를 갔다. 시간이 갈수록 함께 한 목사님의 가방은 줄어들고, 내 가방의 부피는 더 커지고 무거워졌다.
비결을 물었다. 낡은 내복을 챙겨와 하루 입고 아래, 윗 내복을 버리니까 가방 부피가 줄어들고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배웠다. 버리는 연습이다. 사진, 편지도 정리하고 버려야 한다. 짐이 무거우면 나그네 여행길이 고생이다.
나그네 길은 미완성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75세에 주신 약속이 25년이 지난 후 100세에 이삭을 통해 약속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자손이 하늘과 별, 바닷가의 모레 같이 많으리라는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완성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보고 환영했다. 믿음으로 댕겨보고 살았다. 자식은 미완성이다. 현재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기도대로 축복받을 미래를 믿음으로 댕겨보고 중보기도를 한다.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슈베르트는 31살 밖에 살지 못했다.
불후의 명작 중 하나가 교향곡 8번이다. 원래 4악장까지 작곡하고 싶어 시작을 했는데 2 악장까지만 완성되었다. 제3악장은 120마디까지 작곡된 초고만 남아 있을 뿐이다. 미완성곡이다. 누가 쓸모없다 하는가? 인생은 나그네이고 미완성이다.
나그네는 본향을 사모한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세 가지 종류의 불쌍한 사람이 있다. 해 저물었을 때 갈 곳 없는 사람, 마음 둘 곳 없는 사람, 그리고 죽어 갈 곳을 모르는 사람이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있다. 현재라는 실존 만이 인간의 삶일 뿐이고, 죽음 이후의 내세, 천국 본향에 대해 철저히 부정했다.
1980년 봄 프랑스 파리 부르셀 병원에 입원하여 4월6일 세상 떠나기 까지 한달 동안 발악을 했다.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고 미치광이처럼 고함을 질렀다.
왜 그랬을까? 신문에 난 기사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 명절, 고향, 본향의 축복이 넘치길 축원한다. 예수 믿고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다.(끝)
김민재 / 2021.03.17 15:4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