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영 목사의 ‘찬양하라’
본문: 시편147:1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무리되는 시다.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선포이고 선언이다. 시편은 성경의 중심에 있다. 성경 중앙을 펼치면 만나는 하나님 말씀이 시편이다. 찬양이다. 노래다.
찬송은 존재 이유와 목적이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내 존재 이유가 찬송이다. 건강 복 받아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천송이다. 마이크 존재 이유는 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목적대로 쓰임 받지 못하면 버려진다. 소금 목적은 짠맛이다. 짠맛 상실은 목적 상실이다. 밖에 버려져 쓰레기통에 던져진다. 목적대로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찬송은 예배이다.
히13:1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 제사는 예배다.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가 찬송이다. 마귀는 찬송을 싫어한다. 방해한다. 못하게 한다. 성령은 찬송케 한다.
찬송은 문제 해결 열쇠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두 가지 질문과 함께 답을 준다. 먼저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살다 보면 문제 만나고 고난 겪는다. 고난에서 면제된 인생 사는 분은 없다. 크고 작고 많고 적음의 문제일 뿐 누구나 다 걱정과 문제를 끌어안고 산다. 문제 해결 열쇠는 기도다.
워싱턴에 가면 국회 의사당이 있다(사진). 아름다운 건물이다. 위는 돔으로 되어있는데 돔 안이 전부 기도실이다. 1955년부터 지금까지 기도실이 비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만나는 시간은 꼭 챙긴다. 하나님께 무릎 꿇은 민족이 세계를 손에 쥔다. 기도가 귀하다. 히스기야 죽을병에 걸렸지만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 나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도했다. 들어주셨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성광 자랑거리는 기도방이다. 누구나,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다. 속상할 때 공원에 가지 말고 기도방으로 와라. 실컷 울고 싶을 때 기도방으로 오라. 잠 출장 다 달아났을 때 기도방으로 오라. 한바탕 부부와 싸우고 갈 곳은 친정집이 아니라 기도집이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두 번째,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Is anyone happy? 행복한가? 찬송해라. 역으로 말하면 찬송하면 행복해진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냥 찬송하라. 아파도 찬송하고, 속상해도 찬송하고, 기분 나빠도 찬송하고, 일이 잘 안 풀려도 찬송하면 행복하게 된다.
김진홍 목사는 유신 시절 옥고를 치렀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했던 것처럼 김 목사님, 역시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다. 남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조용히 불렀다.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갑자기 옆 감방에서 벽을 꽝꽝 치면서, 그 노래 나 좀 듣게 큰 소리로 불러주시오, 당신 누구요. 목사 아들인데 아버지 말씀 거역하고 살다가 사람 다치게 하고 여기 들어왔어요. 방금 노래, 어머니가 평소 부르시던 찬송인데, 찬송을 들으니 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네요. 그래요. 따라 부르실래요.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얼굴을 볼 수 없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눈물, 콧물, 땀물, 삼 형제가 줄줄 흐르며 뜨겁게 찬송을 불렀다. 몇 개월이 지난 후 나이 드신 분이 김 목사님을 찾아왔다. 옆방 애 어미인데 내 아들이 너무 많이 변했어요. 옆방 목사님과 함께 찬송가 부르며 달라진 것이다. 찬송하면 웃을 일이 생기고, 행복한 일이 생긴다.
147편 1절,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찬양은 선하다. 좋은 일(Good)이다. 이익이다. 생기는 것이 많다. 아름답다(beautiful). 즐겁다. 기쁘다(pleasant). 마땅하다. 당연하다(comely). 왜 그럴까? 세우시고(build up), 모으시고(gathers), 고치시고(heals), 싸매시기(bind up) 때문이다.
제임스 페니가 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40세에 사업에 성공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1929년 경제공황 때 58세 나이로 파산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병까지 얻어 미시간주 베들 클릭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절망의 늪에 빠졌다. 우울증에 걸렸다. 앞이 캄캄했다. 가능성 제로 퍼센트다. 어느 날 옆 병상에서 들려오는 찬송 소리를 듣는다.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하늘의 음성이 들렸다. 영혼에 전율이 흘렀다. 강한 성령님 임재를 체험했다. 힘과 용기가 생겼다. 치유 받고 회복하여 JC백화점을 열어 성공했다. 백화점 왕이 되었다. 후에 고백한다. “나는 무한한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 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마비된 심령으로 풀이 죽어 들어갔으나 해방되어 기쁜 마음으로 나왔다. 찬양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찬양은 찬양대 전유물이 아니다. 성도는 찬양 감상하고, 평가하는 심사위원이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다. 오늘 찬양 죽 쑤었어요. 글쎄 어떤 것이 죽 쑨 찬양인가? 하나님 높여 드리는 찬양은 박자, 음정 상관하지 않는다.
찬양은 취미가 아니라 의무다. 꼭 해야 한다. 오늘 말씀은 계속 찬양할지어다. 찬양할지어다. 명령이다. 흥 돋우기 위해 하는 것 아니다. 예배 분위기 띄우기 위해 하는 것 아니다. 시간 때우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예배 준비를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준비 찬송은 잘못된 말이다. 늘 조심해야 할 것은 찬양이 쇼 되지 않아야 한다.
찬양 속에 세 가지 힘이 있다.
위로 올라가는 힘이다. 하늘로 올라간다. 하나님께 올라간다. 기도가 향이 되어 보좌로 올라가듯 찬양도 향이 되어 위로 올라간다.
가슴에 파고드는 힘이 있다. 부정적 생각에 파고들어 긍정적 생각을 준다. 답답한 바위 가슴에 파고들어 뻥 뚫어주고, 시원한 폭포수 답을 준다. 슬픔의 눈물에 파고들어 기쁨, 감사의 복을 준다.
밖으로 뻗어가는 힘이 있다. 마귀와 사탄이 물러간다. 더러운 귀신이 물러간다. 영적 에너지가 충전된다. 할렐루야
시147: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아멘
김민재 / 2018.09.08 19:3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