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장군유지 충의문
일본인 농장주가 떠난 곳에 남은 발산리 석탑군
애국충절로 따라 도착하는 최호장군 유지
개정면 발산리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건너와 대규모 농장을 경영했던 일본인의 흔적과 조선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장군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발산리 석탑군과 최호장군유지이다.
군산시내와 외곽을 관통하는 번영로를 타면 군산월명체육관에서 15분 남짓한 거리에 ‘최호장군길’과 ‘바르메길’이 있다.
발산정미소 맞은편 최호장군길은 쭉 뻗은 애국충절거리가 장관인데, 가을철 만발한 무궁화와 코스모스를 만끽하며 걷는 재미가 있다. 무르익은 가을 날씨를 즐기기에 제격이기 때문에 넓게 펼쳐진 논두렁을 거닐어 보면 좋다.
최호장군길에서 대야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바르메길’을 만날 수 있다. 쭉 뻗은 길에 농협, 개정면사무소 등이 위치해 있어 발산 주민들의 생활권이기도 하다. 걷다 보면 발산초등학교가 보이는데 쓸쓸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유적들이 나무들 아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석인상, 발산리 오층석탑
사람이 떠나고 남은 흔적, 발산리 석탑군
1947년 ‘개정공립초등학교 발산분교장’으로 시작한 발산초등학교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과 석탑을 간직하고 있다.
발산초교는 번영로에서 바르메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개정면사무소와 개정면 주민자치센터가 있으며, 바로 앞 위치하고 있다.
발산리 석탑군은 운동장과 학교 건물 뒤뜰에 자리잡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개정면 일대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며 부를 축적한 시마타니 야소야의 보물창고와 그가 전국에서 수집한 석등, 석탑, 승탑(부도) 등이 남아 있다.
발산리 오층 석탑은 보물 제276호, 발산리 석등은 보물 제234호로, 후백제 시대 창건한 완주 고산의 봉림사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문화재 수집이 취미였던 시마타니가 자신의 농장에 두고 감상하기 위해 완주 봉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탑과 석등 등을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 지금에 이르게 댔다.
제각기 다른 모형의 석인상과 유물들도 한데 위치해 있다. 모두 시마타니가 전국 각지에서 불법으로 수집한 것으로, 농장에 정원을 조성한 흔적들이다.
학교 쪽으로 가 보면 그가 만든 회색 콘크리트로 만든 시마타니금고(국가등록문화재 제182호)가 나온다. 1920년대 사용한 금고로,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귀중품들을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시마타니는 이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살아생전 조성한 발산리 석탑군은 여전히 남아 있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원도심 일대 많은 유적지와 시간여행마을이 조성돼 있어 시간여행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지만, 교외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발산초등학교를 방문해도 좋다.
최호장군유지에서 바라보는 개정 평야
넓은 개정평야를 한 눈에 담다
발산초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최호장군길을 걷다 보면 길 구간마다 태극기 국기대가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군산시는 지난 2017년 개정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국기대를 조성하고 최호장군의 애국 정신을 기리고 있다. 봄철이 되면 철쭉꽃길, 여름~가을철이 되면 코스모스길로 장관을 이룬다.
전군도로(번영로)에서 개정보건지소 방향으로 쭉 걷게 되면 최호장군전시관과 최호장군 유지에 다다른다.
최호 장군은 1574년(선조 7년) 무신 중 한 명으로,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진압했으며 1597년 정유재란 칠천량 해전에선 왜군을 무찌르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29년 장군의 후손 최호선에 의해 유지가 건립되었으며, 이후 2001년엔 사당이 조성됐다.
관객들을 위한 안내문과 함께 웅장한 충의문(忠義門)을 넘어가면 최호 장군의 묘소와 묘소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의사(忠義祠)가 보인다.
묘소는 최호 장군과 부인, 아버지 최한정과 최호의 아들, 손자까지 4대가 모셔져 있으며, 그 아래로 광활한 개정 평야가 한 눈에 펼쳐진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 하늘아래 묘소를 방문하면 개정의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김혜진 / 2022.10.28 09:39:55